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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 부는 한국 만화 열풍 [2]
예나 지금이나 충무로의 블루칩

허영만의 만화 3편-<타짜> <식객> <각시탈>

왜 만드나? “발품과 애정으로 건져올린 풍부한 극적 요소들이 눈앞에 있는데 그걸 놓치고 싶겠나?”

허영만은 여전히 충무로의 블루칩이다. <타짜>가 곧 개봉을 앞두고 있고, <식객>은 촬영에 들어갔으며, <각시탈>은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영화뿐이랴. 애니메이션, 드라마쪽의 관심도 못지않다. 열매를 미처 맺지 못한 그동안의 노력까지 합한다면, 허영만에 대한 충무로 안팎의 관심은 경배에 가깝다. 그렇게 불러도 정말이지 무리가 아니다.

<타짜> _ 도박판 인생들은 무엇으로 사나

<타짜>는 1999년 7월부터 4년 동안 <스포츠조선>에 연재됐던 도박만화다. 모두 4부(1부-지리산 작두, 2부-신의 손, 3부-원 아이드 잭, 4부-벨제붑의 노래)로 구성되어 있다. 연재 당시 “100만 이상의 홈페이지 뷰”라는 기록적인 관심을 끌어냈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미친년 널 뛰듯 쌀값이 뛰던” 1950년대. 곤은 우연히 화투판에 끼었다가 누나가 들고온 50만환까지 박무석 패거리에게 모조리 빼앗긴다. 눈이 뒤집힌 곤은 50만환을 되찾기 위해 전설의 타짜 평은수를 찾게 되고, “화투를 들고 승부하는 무사”들의 세계에 발딛는다. 그리고 “저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살벌한 도박, 아니 인생판에 뛰어든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허영만 만화의 첫 번째 특징은 “진짜 같은 묘사”다. 깨알 같고, 소금 같은 디테일들이 몰입하게 만든다. 이는 모두 엄청난 발품 취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최동훈 감독은 “무엇보다 취재가 다 되어 있는 스토리였다. 만화의 경우, 드라마의 극적 구성을 위해서 리얼리티를 포기하곤 하는데 <타짜>는 둘 다 지니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해체하는 것뿐이었다”고 말한다. 영화는 원작의 1부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되, 인물들을 1990년대 중반으로 옮겨왔다. “곤의 오디세이”를 통해 “욕망의 덧없음을 강조했던” 원작에 욕심을 보태, 영화는 극중 정 마담의 소유욕을 서브 플롯에 배치함으로써 “꿈틀거리는 인간 욕망, 그 자체를 보여줄 계획”이다. 허영만의 만화가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최동훈 감독은 <타짜>의 부제를 붙인다면 “곤(영화에선 고니다)이 만난 사람들”이라고 했다.

<식객> _ 음식과 인생은 드라마다

허영만이 5년째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식객> 또한 <타짜> 못지않다. “단행본만 54만부”가 팔려나간 <식객>의 주인공은 야채, 생선, 건어물 등을 트럭에 싣고 다니며 파는 31살 성찬. 이문보다는 정성을 높이 치며, 최고의 재료가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으며, 미식가인 동시에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는 요리실력을 갖고 있는 성찬을 통해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인간들과 사연들과 음식들이 끊임없이 소개된다. 연말 개봉을 목표로 촬영 중인 전윤수 감독은 <식객>을 두고 “음식에 얽힌 ‘인간’드라마”라고 설명한다. “원작에서 다루는 인간들과 음식들은 소박하고 진솔하다. 물론 원작에서도 경쟁 구도를 끌어쓰지만, 그건 단순한 극적 장치일 뿐 무협과 같은 허황된 이야기로 풀어가지 않는다.” 3권 ‘소고기 전쟁’ 편을 바탕으로 성찬과 그의 상대 봉주가 최고 요리사가 되기 위해 대결을 벌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 초고를 손본 것도 그 때문이다. “전통이나 대결보다는 인간이 두드러지는 이야길 해보고 싶었다. 각색 과정에서 인물과 사연을 압축할 수밖에 없었지만, 원작의 장점이 훼손되지 않도록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전윤수)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과 대상에 대한 끈질긴 취재가 맞물려 ‘풍부한 극적 요소’를 쏟아낸다. 그게 허영만 만화의 특장이다. <타짜> <식객>처럼 에피소드 형식이라 할지라도, 풍부한 극적 요소들이 종국에는 모여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낸다. 충무로가 허영만에 열광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은, 그러나 동시에 좀처럼 넘기 어려운 벽이기도 하다.

<각시탈> _ 일제 앞잡이 강토의 복수

<비트>를 제작했던 <각시탈>의 조민환 PD는 “만화적인 장점을 영화적 장점으로 환치시키는 것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각시탈>처럼 나온 지 오래된 작품의 경우, 요즘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대로 옮기면 <장군의 아들>보다 시대에 뒤떨어진 영화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한다. 1974년에 나온 <각시탈>은 일제 앞잡이로 살아가던 이강토가 혈육을 제 손으로 죽인 업보를 뒤늦게 깨닫고서 각시탈을 쓴 뒤 일제에 맞서 복수를 한다는 내용. <각시탈> 제작진은 <배트맨>의 고담시처럼 시대는 가져오더라도 공간은 판타스틱한 분위기를 덧입힐 예정이다. “<각시탈> <무당거미> 등의 초기작에는 클로즈업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있다. 그 느낌만은 놓치지 않고 극대화할 것이다.” 허영만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제각각의 주낙을 던진 이들은 과연 월척을 건져올릴 것인가.

사랑은 인터넷을 타고

강도하의 만화 2편-<위대한 캣츠비> <로맨스 킬러>

왜 만드나? “심리묘사와 리얼리티가 뛰어나다. 게다가 색감, 공간 구성 등은 거의 영화적이다.”

만화가 강도하는 이른바 ‘청춘 삼부작’이라 불리는 인터넷 연재만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강성수라는 본명을 강도하라는 필명으로 바꾼 뒤 2005년 3월부터 11월까지 미디어다음에 발표한 첫 번째 작품 <위대한 캣츠비>는 그의 작품 인생에서 일대 전환점을 마련해줄 만큼 많은 인기를 얻으며 끝났다. 그리고 올해 5월부터 연재 중인 두 번째 <로맨스 킬러> 역시 만만치 않은 호응 속에서 지금 2부가 진행 중이다. 채 끝나지도 않은 <로맨스 킬러>를 포함하여 두 작품 모두 영화화가 결정되면서 이 두편의 인기 만화가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옮겨질지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위대한 캣츠비> _ 20대 청춘들의 사랑 비망록

“이름은 캣츠비, 스물여섯해 지난 수컷. 야망없는 날백수. 나를 수식하는 적절한 표현들이다.” 주인공의 푸념에서 시작하는 <위대한 캣츠비>는 캣츠비를 포함하여 주요 등장인물 모두 고양이와 개로 치환되어 있지만, 그 생김새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20대 후반 젊은이들의 쓰디쓴 사랑 비망록에나 오를 만한 이야기와 판타지다. 그래서 “의인화된 동물을 주인공으로 했지만, 인간적인 이야기다. 게다가 그 주인공은 평범한 소시민이자 젊은이다. 그를 통해 젊은이의 어떤 색다른 자화상이 그려져 있다. 럭셔리한 청춘이 아니라 보통 청춘들의 이야기가 잘 그려진 것이 특징”(인디컴시네마 김태영 대표)이라는 말이 가능해진다. 이미 시나리오 초고가 나온 <위대한 캣츠비>는 내년 2월이나 3월 중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며, <여자, 정혜>와 <러브토크>로 인물들의 세심한 심리 변화까지 담아내어 실력을 인정받은 이윤기 감독이 연출자로 결정되었다. 인디컴시네마의 김태영 대표는 “데뷔 이후 예술적인 실험을 한 이윤기 감독이 이 작품을 통해 충분히 스펙트럼을 넓혀 상업적으로도 소통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로맨스 킬러> _ 딸 친구에게 반한 40살 백수의 열병

청춘 삼부작의 두 번째 프로젝트 <로맨스 킬러>는 언뜻 보기에 그림체나 분위기가 <위대한 캣츠비>와 많이 달라 보인다. 그러나 예민한 감식안의 독자들이라면 이것이 언젠가 강도하가 말한 “사람의 감정은 결코 단련되지 않는다”는 생각의 변주라고 느낄 만하다. 가령, <위대한 캣츠비>의 감성은 두 번째 <로맨스 킬러>에서 40살이 된 전직 킬러에게 옮겨간다. 벼락같이 찾아온 사랑에 대한 열망으로 전직 킬러는 고민에 빠진다. 7년 전 지금의 아내를 만난 것을 계기로 킬러를 그만두고 평범한 ‘반백수’로 살고 있는 R, 그가 지금 딸의 고등학교 친구에게 마음을 뺏겨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이다. 연재가 진행 중인 지금도 그는 심장을 따를지, 머리를 따를지 고민 중이다. “<위대한 캣츠비>에서도 그렇지만, 킬러의 생활보다는 그 직업을 포기하고 백수로 산다는 것에 대한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그래서 블랙코미디로 풀어볼까 생각 중”이라고 제작사 더드림앤드픽쳐스 백선희 프로듀서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로맨스 킬러>의 경우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감독을 정하는 일이 급선무다. “작가를 따로 두기보다는 이 소재를 잘 쓸 수 있는 남성 감독을 찾을 생각이다. 원작자 역시 두 가지 결말의 판본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영화의 내용도 거기에 맞춰 생각 중이다. 인터넷이라 표현 못했던 작가의 의도나 수위까지 최대한 반영하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백선희 프로듀서는 밝힌다.

<위대한 캣츠비>와 <로맨스 킬러>에서 주인공들은 스스로 칭하듯 밝지 않은 미래를 남겨둔 반백수다. 그렇게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사는 그들의 삶 속에서 사랑은 갑자기 화두가 되어 온갖 감정의 파노라마를 찍어낸다. 강도하의 만화를 영화로 만들겠다고 결정한 제작사들이 발견한 장점도 대개 그런 상황과 심리 상태의 표현에 있다. “심리묘사와 리얼리티가 뛰어나다”는 중평은 그래서 나온다. 이미 ‘영화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강도하의 만화가 어떻게 확실한 ‘영화’의 옷을 입을지 그 점이 바로 이 두 작품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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