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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톤베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2]
오정연 2006-09-18

<글래스톤베리>는 글래스톤베리페스티벌과 닮아야 한다

“잠을 이룰 수도 없었고, 갈수록 신경질적이 되어갔다. 편집감독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텐데, 어쩌면 중년의 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1년에 걸쳐서 산더미 같은 분량의 영상을 확인하고 기록해야 했지만 진짜 위기는 본격적인 편집과 함께 찾아왔다고 템플은 고백한다. 불놀이를 하다가 자신의 옷에 불이 옮겨붙어 호들갑을 떠는 소년, 축제에선 남자보다 음악이라고 말하며 웃는 여자, 글래스톤베리를 스쳐간 숱한 행위예술가들의 퍼포먼스와 눈을 잡아끄는 공연들…. 숱한 소스 중에서 영화를 진전시키고, 역사적 의의도 있으면서, 전체를 이루어 더욱 큰 의미를 지닐 만한 단 한 장면을 골라내야 했다. 템플이 안정을 찾고 편집의 진짜 재미를 느낀 것은 <글래스톤베리>와 글래스톤베리페스티벌이 서로 닮아야 한다는 깨달음 이후의 일이었다. “그것은 매우 임의적인 행사여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글래스톤베리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이들이다. 저 코너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예상할 수 없고 모든 일은 갑자기 벌어지거나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영화 자체가 아주 무작위적일 수도 있음을, 모든 요소들이 정확하게 조직되고 설명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됐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모두 자신의 공간을 찾아야 해. 나에게 시간과 공간을, 거짓이 아닌 진실을. -콜드플레이의 <Politik> 중에서

광범위한 시공간의 구석구석에서 축제를 바라본 다양한 시점을 하나로 묶어주는 유일한 요소는 러닝타임 내내 흘러나오는 주옥같은 음악들이다. 벨벳 언더그라운드, 닉 케이브, 더 브레이버리, 모리세이, 프로디지, 뉴 오더, 사이프러스 힐, 밥 말리, 비욕, 케미컬 브러더스, 핑크 플로이드, 매시브 어택…. 35년간 글래스톤베리를 빛나게 한 공연을 모두 열거하거나 유명도와 완성도 순으로 줄을 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템플은 엄격한 기준으로 동원해 필요한 공연장면을 선택해야 했다. 라이브 자체가 주는 전율, 관중과 공연자의 호흡은 물론 “글래스톤베리의 변화, 변치 않는 정신을 설명할 만한 분위기나 가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이유로” REM과 조니 캐시가 빠졌다. 템플의 개인적인 취향도 배제했고, 평소 즐겨듣지 않았던 데이비드 그래이의 노래는 글래스톤베리를 직접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집어넣었다. 펄프의 <Common People>은 반드시 포함되어야 했다. 그러나 <글래스톤베리>의 모든 음악은 노래와 공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때쯤 멈춘다. “음악은 영화의 연료일 뿐 그것이 영화의 진행을 멈춰선 안 된다”는 원칙 때문이다. 누구나 매혹될 만한 장면의 나열만으로는 대상을 설명할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템플의 의도대로 되어간 것은 아니다. 1971년 데이비드 보위가 처음으로 공연했던 영상은 끝내 찾지 못했고(사운드만 가까스로 구했지만, 달리 사용할 방도가 없었다), 1985년 이전 축제의 초기 모습에 대한 사적인 기록은 절대적으로 부족했으며(2005년, 편집에 여념이 없을 무렵에도 템플은 당시의 기록을 찾아 수소문 중이었다), 마이클 이비스를 비롯한 <BBC> 등 <글래스톤베리>의 투자자들은 영화가 지나치게 불친절하거나 러닝타임이 너무 긴 것은 아닌지 우려했다. 워낙 유명한 뮤지션의 유명한 노래들을 제대로 돈을 지불하고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에서 저작권도 문제가 될 수 있었고, 유명한 뮤지션을 우선적으로 포함시켜야 한다는 압력도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글래스톤베리라면 내로라하는 영국의 뮤지션들이 형편없이 적은 출연료를 무릅쓰고서라도 달려오는 상황, 축제 그 자체를 재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투자자들의 마인드는 템플의 시도를 적절하게 뒷받침해주었다.

글래스톤 베리가 이룬 것은 ‘생존’

“지난 35년간 동안 우리는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었는데 글래스톤베리는 이를 측정하는 좋은 통로다. 달에 첫발을 내딛는 것과 같은 대단한 변화가 아니라, 사람들의 외양, 옷차림, 제스처 등 우리 삶을 이루는 사소한 표면의 변화 말이다. 영화를 통해 그 시간을 여행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줄리언 템플의 말처럼 우리는 친밀감과 위트 가득한 사적인 영상을 통해 영국의 사회사를 마주한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글래스톤베리를 만드는 조직위원회, 축제를 가능하게 하는 재정적인 배경, <BBC> 중계를 둘러싼 갈등처럼 정작 축제 그 자체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 “크리스 마틴이 음정을 무시하면서 애처럼 노래를 부르는 것도 참기 힘들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1970년 <우드스탁>이 담고 있던 이상적인 경계를 전혀 살리지 못했다. 그저 히피의 불꽃놀이가 유발하는 웃음에 기댄 오락영화에 불과하다”는 <가디언>의 혹평처럼 글래스톤베리를 다루는 템플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영화를 향한 비판은 글래스톤베리페스티벌 자체에 대한 것으로 연결된다. 템플의 화법은 글래스톤베리의 본질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고민은 완벽한 이상향은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사랑과 평화, 조화의 기치를 올린 축제가 숱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은 그 때문이다. 우드스탁이 그랬고, 몬테레이가 그랬고, 와이트섬이 그랬다. 글래스톤베리 역시 마찬가지다. 여전히 화장실은 쾌적하지 못하고, 거대 기업의 개입에 대한 축제의 저항력은 갈수록 약해질 것이다. 영화는 페스티벌의 소비지향적인 변화와 곳곳에 설치된 CCTV에 대해 한탄하던 이들이 거대한 안전담장은 필요악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드스탁과 몬테레이와 와이트섬이 이루지 못한 것을 글래스톤베리가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존’이다. 한때 자신이 거둬들였던 히피들을 다음해에 내쫓는 등 때로 모순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마이클 이비스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 템플은 “담장이 필요한 이유를 영화를 통해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템플은 펑크와 히피의 공통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펑크와 히피가 그 자체로 대구를 이루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기념하고, 각자의 목소리를 중시한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히피와 펑크 모두 70년대를 경유하면서 변질된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후손들이 그런 축제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는 세대가 되기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축제를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난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어. 평범한 사람이 하는 일을 하고 평범한 사람과 함께 잠들고 싶어. -펄프의 <Common People> 중에서

결국 <글래스톤베리>는 모든 것이 변하는 과정 속에서 여전한 것들을 보여준다. 부모와 함께 축제를 찾은 아이들, 시시껄렁한 사람들의 농담, 그리고 어떤 열기. 영화의 마지막, 30년 만에 글래스톤베리를 찾은 데이비드 보위가 무대에서 말한다. “30년간 오지 못했는데, 이곳은 미칠 듯이 좋군요!” 그리고 그는 <Heroes>를 부른다. 관객은 열광하기 시작한다. 수십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시간은 그렇게 서로의 손을 잡는다.

영화 거장들의 음악 다큐멘터리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음악과 영화의 흥미로운 결합

영화감독 중에는 광적인 음악팬이 많다. 그러나 거장들의 다큐멘터리에서 음악이 주된 소재가 되는 것은 단지 취향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문학이나 미술에 비해 음악, 그것도 대중적인 뮤지션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대중음악의 특수성에 기대어 설명해야 한다. 영화편집의 리듬과 음악의 비트는 모두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흥미진진해지고, 적절한 시의 운율과 가치관을 담은 대중음악 가사는 산문보다는 운문에 가까운 영화와 잘 어울리며, 무대 위에서 접신하는 숱한 뮤지션들은 우리 시대의 예술가 혹은 근대적 의미의 천재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대중음악과 영화는 이른바 ‘시대정신’에 가장 민감한, 근대적 문화활동의 결과물이 아닌가.

빔 벤더스가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을 통해 쿠바의 노곤한 세월을 전달한 것은 영화와 음악의 대중적인 만남으로 손꼽힌다. 이후 그는 블루스의 숨겨진 명인을 찾아가는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을 완성했다. 벤더스와 함께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이크 피기스 등을 기용하여 <더 블루스> 시리즈를 제작하고, 그중 한편을 연출한 마틴 스코시즈 역시 <우드스탁>을 편집한 음악광. 1978년 밥 딜런의 백밴드 출신 그룹 ‘더 밴드’(The Band)에 대한 다큐멘터리 <라스트 왈츠>를 만들었고, 급기야 록뮤직 역사상 가장 모순되고 모호한 뮤지션 중 한명인 밥 딜런을 다룬 <밥 딜런 노 디렉션 홈>을 완성했다. 밥 딜런을 포함한 60년대의 전설적인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시대적 은유로 매우 적절하다. 혁명의 기운으로 들끓던 1968년 <Sympathy for the Devil>을 녹음하는 롤링 스톤스와 블랙팬더의 격렬한 운동을 연결한 고다르의 <악마에 대한 동정>은 음악다큐라기보다는 특정 시대의 반문화를 고찰한 보고서로 받아들여진다. 음악과 뮤지션 그 자체에 순수하게 매혹된 감독들은 때로 라이브 무대와 이를 둘러싼 상황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설명해내기도 한다. 닐 영과 크레이지 호스의 1996년 콘서트 투어를 따라잡은 짐 자무시의 <이어 오브 더 호스>(Year of the Horse), 컨트리 음악의 성지 내슈빌로 돌아온 닐 영의 담담하되 내공이 깃든 공연을 역시나 듬직하게 옮긴 조넌선 드미의 <닐 영: 하트 오브 골드>는 그러한 예가 될 것이다. 드미는 1984년 토킹 헤즈의 콘서트다큐 <스탑 메이킹 센스>(Stop Making Sense)를 만든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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