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핀 꽃 Water Flower 기노시타 유스케/ 일본/ 2005년/ 92분
여고생 미나코는 오래전 자신과 아빠를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를 미워하고 있다. 다시 이혼한 엄마가 이복동생 유를 데리고 마을에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나코는 몰래 엄마의 아파트 부근을 맴돌다가 게임센터에서 놀고 있는 유에게 충동적으로 접근한다. 미나코는 자신을 따르는 유의 손을 잡고 야간버스에 올라 돌아가신 조부모의 집이 있는 바닷가로 향한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믿고 살아온 미나코는 천진한 유를 보면서도 외로움을 버리지 못한다. 대사가 매우 적은 <물에 핀 꽃>은 가만히 앉아 있는 소녀의 뒷모습과 바닷가에 부는 바람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영화다.
시네마 킨더가든 단편모음1 세서미 워크숍의 댄싱 디아블로 스튜디오 특선 외
인형극 <세서미 스트리트>로 유명한 세서미 워크숍과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댄싱 디아블로가 합작으로 만든 교육용 애니메이션 모음. 아기새들이 프로펠러 소음을 내며 자기들의 합창을 방해하는 커다란 새를 퇴치하는 <프로펠러 새>(사진), 어린 소녀와 아기 고양이의 화해를 펠트천과 털실을 예쁘게 오려붙여 표현한 <플러피>, 크레용으로 정감있게 그린 소녀가 죽어가는 화분을 살리고자 분투하는 <기지개를 펴고 쑥쑥>, 깜빡 잠이 들어 태워버린 치즈빵이 뜻밖에 효자노릇을 한다는 내용의 푸에르토리코 전래 동화를 그림책 삽화처럼 이어가는 <치즈빵 마을> 등 귀엽고 아기자기한 애니메이션이 가득 모여 있다.
왕과 새 The King and the Mocking Bird 폴 그리모/ 프랑스/ 1979년/ 81분
안데르센의 동화 <양치기 처녀와 굴뚝청소부>를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각색한 애니메이션. 포악한 국왕 샤를 Ⅴ+Ⅲ=Ⅷ+Ⅷ=ⅩⅥ세는 사격을 좋아하지만 사팔뜨기인 탓에 과녁을 잘 맞추지 못한다. 그러나 왕은 우연히 새의 부인을 쏘아 맞추고, 새는 왕에게 원한을 품게 된다. 어느 날 왕의 침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 속의 양치기 처녀와 굴뚝청소부는 사랑을 나누다가 왕의 초상화한테 들키고 만다. 양치기 처녀와 굴뚝청소부는 질투에 불타는 왕의 초상화를 피해 거대한 도시를 누비며 도망다니고, 왕을 미워하는 새가 그들을 돕는다. 현대와 미래와 중세의 건축물에 한데 섞여 M. C. 에셔의 판화처럼 초현실적인 깊이감을 자아내는 도시가 인상적인 작품. 디지털 리마스터링 복원 작업을 거쳐 상영된다.
체부라쉬카와 친구들의 모험 The Adventures of Cheburashka and Friends 로만 카차노프/ 러시아/ 1969년/ 74분
<악어 게나와 그의 친구들> <쟈쟈 표도르, 말하는 고양이와 개> 등으로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동화 작가가 된 예두아르트 우스펜스키의 작품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체부라쉬카가 친구들과 겪는 모험 이야기 세편을 모았다. 과일 가게에 배달온 오렌지 상자에서 나타난 체부라쉬카는 종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동물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퇴짜를 맞은 생물이다. 그는 동물원의 악어 게나와 친구가 되어 아이들을 위해 운동장을 만들기도 하고, 휴가를 떠났다가 변덕스러운 할머니 샤포크리악 부인을 만나 자연보호에 동참하기도 한다. 다소 색감이 어두운 인형애니메이션이지만, 아직도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 체부라쉬카가 순박해 보이는 눈을 깜박일 때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녹아내릴 만하다.
파란 나비 The Blue Butterfly 레아 풀/ 캐나다/ 2004년/ 96분
열살 먹은 소년 피트는 뇌종양을 앓고 있다. 앞으로 몇달밖에 살지 못할 피트의 소원은 존경하는 곤충학자 앨런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던 파란 몰포나비를 채집하는 것이다. 피트의 엄마 테레사는 앨런을 설득해 걷지도 못하는 피트를 데리고 남아메리카 열대우림으로 날아간다. 피트는 앨런의 등에 업힌 채 나비를 찾아다니고, 앨런의 친구이기도 한 주민 알레호의 어린 딸과 수줍은 우정을 나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파란 나비>는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씩씩하고 어른스러운 소년과 상처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어른의 교감이라는 점에서 익숙한 영화다. 그런 진부함을 보상해주는 것은 아름다운 아마존의 곤충들. 무지개 색채를 지닌 나비와 봄의 나뭇잎처럼 푸른 사마귀와 손바닥만한 풍뎅이가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방불케 한다.
할 타라의 모험 Strings 안데르스 론노 클라룬트/ 덴마크/ 2004/ 91분
줄로 움직이는 퍼펫을 사용해 만든 인형극 영화. 입을 벌리지 못하고 표정 변화가 없는 퍼펫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배경과 촬영각도에 다채로운 변화를 주어 영웅서사시에 가까운 판타지로 완성됐다. 하나하나 작품이라 할 만하고 인물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나무 인형들도 아름답다. 헤발론의 왕자 할은 전쟁과 패배에 지친 아버지 카로가 자살하자 왕좌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카로의 사악한 동생 네조는 유서를 숨기고 카로가 적국 제리츠에 의해 살해당한 것처럼 꾸민다. 복수를 맹세한 할은 여동생 지나를 고국에 남겨둔채 여행자로 가장하고 적국을 향해 떠난다. 형제 사이의 원한과 신분을 숨긴 왕자, 신비한 여인과의 사랑이 이집트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시노모리 쇼타로 특별전
인간의 온기를 가진 사이보그의 세계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 시리즈의 원작자인 이시노모리 쇼타로는 차가운 기계 몸을 가졌지만 영혼만은 인간의 온기를 버리지 못했던 사이보그를 주인공 삼아 독창적인 작품들을 쏟아낸 만화가였다. 고등학교 시절 <철완 아톰>의 데즈카 오사무에게 발탁된 이시노모리는 1954년 <이급천사>로 데뷔했고, <사이보그 009>의 성공으로 애니메이션에까지 뛰어들게 됐다. 이번 고양어린이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모두 다섯편이다.
도에이가 제작한 1966년작 <사이보그 009>와 1979년 방영된 TV시리즈의 극장판인 <사이보그 009 초은하전설>은 캐릭터의 역사와 디자인의 변화 등을 한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명의 히어로가 대형을 짜서 움직이는 전대물에 능했던 이시노모리는 이 시리즈에서 무려 아홉명의 사이보그로 구성된 전대물을 시도했다. 여기에 박사까지 더하면 열명이 된다. 지구 지배의 음모를 꾸미는 블랙 고스트는 아이작 박사를 사주해 001부터 009까지 아홉명의 사이보그를 제조한다. 그러나 전쟁도구로 사용되는 현실에 반감을 느낀 사이보그들은 섬을 탈출해 블랙 고스트에 맞서 싸운다. 원하지 않는 사고로 초인적인 능력을 얻은 사이보그들의 비애와 상실감이 묻어나는 시리즈. 얼굴 반쪽이 투명해 몸 안의 기계가 드러나는 디자인이 인상적인 <인조인간 키카이다>는 TV시리즈를 극장판으로 만든 작품이다. 양심회로를 지니고 있어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이보그가 주인공이다.
<해저 3만 마일>과 <하늘을 나는 유령선>은 특촬물에 어울리는 작품을 주로 만들었던 이시노모리의 전력 중에서 다소 독특해 보이는 작품들이다. <해저 2만리>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의 여행이 생각나는 <해저 3만 마일>은 1970년 작품으로 바다와 모험을 좋아하는 소년 이사무의 모험담이다. 괴수가 습격해온 섬에서 예쁜 소녀 앤젤을 구해준 이사무와 친구 치타(원숭이 치타가 아니고 진짜 동물 치타)는 해저왕국의 공주인 앤젤과 함께 바닷속을 구경하고 그녀의 적국과 싸우게 된다. 젊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거대 로봇의 디자인을 맡았던 1969년작 <하늘을 나는 유령선>은 거대한 로봇의 습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 하야토가 버거운 적을 맞아 용감하게 싸우는, 영웅신화의 원형과도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