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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있수다] 바꿀 수 없는 어떤 것
김현정 2006-09-11

처음 일을 시작한 1999년 무렵엔 많은 것이 지금과 달랐다. 메일로 보도자료를 받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보도자료를 일일이 철해두었고, 스틸사진도 엽서나 슬라이드로 받아 이름표를 붙여 보관했다. 쓸 만한 한국어 데이터베이스가 없었던 탓에 외화의 정확한 영화 제목과 배역 이름을 찾는 것도 일거리였다. 그럴 때면 <열려라 비디오 10000>(<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광태(봉태규)가 경재(김아중)에게 작업거느라 제본을 부탁하는 바로 그 두꺼운 책!)을 찾아보곤 했는데, 그 책 또한 사람이 만든 것이어서 100% 정확도를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날로그 시대의 영화기자들은 “<유니버설 솔저>가 맞을까, 아님 <유니버셜 솔저>가 맞을까? 아님 <유니버설 솔져>?” 따위의 시시한 농담을 던지며 천진난만한 수습기자를 혼란에 빠뜨리곤 했다.

그 시절 자주 토론의 대상이 된 문제 중의 하나가 중국어권 인물의 인명 표기 문제였다. 대만 감독 차이밍량은 최명량이라고 쓰지 않는데, 홍콩 감독 왕가위는 왜 왕자웨이라고 쓰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본토 감독 지앙원은 강문인가, 지앙원인가. 일하기가 싫었던 기자들은 마감이 다가오면 판단을 내려줄 권위있는 연구자도 없어 끝날 줄 모르는 그 토론을 핑계삼아 수다떨기를 좋아했다. 아마도 결론은 이런 것이었을 거다. 중국과 대만 감독은 누군가 이미 원어 발음을 달아주었지만 홍콩 감독과 배우를 원어 발음으로 쓰려면 우리가 찾아야 한다! 게다가 홍콩에선 광둥어를 쓰는데 그걸 무슨 수로 찾아 쓴단 말이냐! 그러니까 그냥 아는 대로 쓰자! 그리하여 내게 왕가위는 아직도 왕가위다.

그런데 내가 홍콩 영화인들을 한국어 한자 발음으로 쓰고 싶었던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나에게 그들의 이름은 외래어 맞춤법 표기의 문제라기보다 추억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70년대 초·중반 출생자라면 누구나 기억할 것이다. 주윤발과 장국영과 유덕화의 이름이 ‘간지’나는 한자로 박혀 있는 사진을 사서 비닐로 코팅해 만든 시가 450원짜리 책받침들을. 가끔 Chow Yun Fatt(주윤발)이나 Leslie Cheung(장국영)처럼 영어로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들의 이름은 그때도 지금도 곧이곧대로 한국어 발음이 먼저였다. 배운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그 이름들이 좋다. 다시 이름을 바꿔 기억한다면 그 시절과 결부된 내 기억도 바꿔야할 것이므로.

최근 류더화(유덕화다!)가 부산영화제가 선정한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타게 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홍콩이 중국의 일부가 된 마당에 류더화는 베이징어 발음이라고 투덜거려봐야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러나 나는 그런 기사를 읽을 때면 마음속으로 유덕화라고 고쳐 읽는다. 청커버의 옷깃을 세우고 앞머리에 힘을 준 예전의 그를 떠올리면서. <열려라 비디오 10000>가 필요없는 시대가 됐지만 바꿀 수 없는 무언가는 언제나 남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