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한데 그 ‘좋아한다’는 게 다 저마다의 기준에 의거한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의 범위도, 알고 있는 음악의 양도, 음악을 듣는 빈도도, 음악을 듣는 방식도 모두 다르다. 천명이 함께 이글스의 <Hotel Calrifornia>를 듣는다면 그 시공간엔 천개의 <Hotel Calrifornia>가 존재한다. 모두 자신의 마음속의 <Hotel Calrifornia>를 듣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기에 음악에 주목하는 공간이 있다. 그리고 그 한쪽에는, 다운받고 지우기를 빠르게 반복하는 이 시대에, 오래전부터 자신이 모아온 LP판으로 옛날 음악을 틀어주는 곳도 있다. 사람들은 역시 자신만의 이유로 그곳을 찾는다. 음악이 좋아서, 분위기가 좋아서, 편해서, 좋아하는 곡을 신청하려고, 자기가 모르는 곡을 들으려고, 추억 때문에. 손님들은 말이 많지만 가게의 주인은 묵묵히 음악을 틀 뿐이다.
올드 뮤직 바의 주인들은 스스로 음악 애호가, 수집가인 동시에 누군가에게 음악이란 욕망을 제공하는 묘한 경계에 서 있다. 이것은 그들의 말없는 이면에 대한 극히 사소하고 부분적인 보고서다. 누군가가 ‘이 계통의 살아남은 원류’라 일컬은 우드스탁이 자리한 신촌을 비롯, 홍대, 신촌, 대학로, 압구정, 분당 혹은 일산에 이르기까지 올드 뮤직 바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버즈, 음악의 숲, 샘 쿡, 트래픽, 네 군데 바를 찾아갔더니 이들 바와 주인장에게는 각양각색의 손님들만큼이나 다채로움이 있었다. 그 다름은 너무 판이하여 서로 섞을 수 없을 정도였지만 단 한 가지 같은 것이 있다면 어느 곳에건 그 나름의 진실이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자신만의 음악이 있듯, 그 다름은 거짓되지 않은 것이었다.
60∼70년대 유명 밴드들의 숨겨진 명곡을 듣는 재미
홍대의 버즈 Byrds
극동방송국 근처에 숨어 있는 버즈(Byrds)는 1년 몇개월 전 문을 열었다. 근처 스튜디오, 블루스하우스, 별밤 같은 올드 뮤직 바들에 비하면 아직 덜 알려진 편이지만 주인장 김영준씨의 내공은 범상치 않다. 그의 전적은 ‘미술학원하다 말아먹고, 판사러 다니다 만난 이봉수, 김상민씨와 비트볼 레코드를 창설했음’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는 존 백스터의 <책 사냥꾼>을 읽고 있었는데, 서른여섯의 나이로 가게 한쪽 벽에 1만여장의 LP를 꽂아넣은 그 역시 수집가의 호칭을 피할 수 없다. 60, 70년대 컨트리·포크 록 그룹의 이름을 딴 가게명이 말해주듯 그는 60, 70년대 음악을 사냥한다. 그의 나이와 물리적으로 들어맞는 시대는 아닌 셈이다. “그러니까 나도 신기하죠. 어쩌다 그때 음악들을 들었는데 막 빠져드는 거야. 요즘 음악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들을 겨를이 없어요. 그 당시 음악이 너무 좋은데 그것도 아직 조금밖에 못 들어서.” 그는 스스로를 지적으로 듣는 종류가 아니라 감성적으로 듣는 종류라고 설명했지만, 무섭게 파고드는 그의 습성을 생각할 때 그는 결코 ‘지적으로 듣지 않는’ 종류라고도 할 수 없는 이다. 그의 방대한 라이브러리 속에는 듣도 보도 못한 그룹의 앨범들이 수두룩하다. 잘 아는 그룹이라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도어스 <Morrison Hotel>을 턴테이블에 얹어도 <Roadhouse Blues>가 아닌 <The Spy>를 고르는 그이기 때문이다(그 앞 곡이 강도 높은 사이키델릭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겠으나). 그래서 평소 밥 딜런, 아메리카, 이글스, 비틀스, 지미 헨드릭스, 데이비드 보위 등을 많이 튼다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아는 이름이라고 아는 곡이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짜릿하다. 버즈에는 ‘내가 몰라도 주옥같은’ 음악이 흘러넘친다. 그렇다고 어려운 곡만 트는 곳으로 오해해선 곤란하다. 신청곡이 우선, 그 사이 공백에 그가 고른 곡을 얹는다. “많이 만족시켜드리려 애쓰지만 컴퓨터로 음악을 트는 데가 아니기 때문에 100%는 못해드려요.” 그 많은 것 중에도 없는 것이 있다. “그게 아날로그겠죠? 100%보다도 좀 모자란 거. 100% 만족하지 못하는 게.” 가식이 없는 그는 약간 낯을 가리는 듯하지만 섬세하고 친절하다. 가게에서 만난 손님이 친구가 되는 순간이 그에겐 최고의 순간이다.
‘추억의 팝송’과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곳
을지로, 음악의 숲
음악의 숲에는 <Oh! Carol> <Blue Velvet> 같은 그야말로 ‘추억의 팝송’이 흐른다. 열댓평 남짓한 공간에 두툼한 검정 소파와 테이블이 바특하게 놓였고, 맥주병을 앞세운 40, 50대 언니, 오빠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다. 단골 손님이 DJ가 되어 판을 틀기도 한다. 이곳은 그들의 아지트. 그 농밀한 분위기에 젊은이의 존재가 외려 어색하다. 동대문운동장역 근처 을지로 한쪽. 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 자리에 가게가 자리한 데는 사연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옷 도매를 하던 김재원씨는 장사에 쓰던 창고가 비자 갖고 있던 LP판을 몽땅 창고로 옮겨놓았다. 이사할 때마다 판 때문에 아내와 전쟁을 치르던 터에 잘됐다 싶어서다. 턴테이블, 냉장고, 소파를 차례로 구비한 창고는 음악감상실 노릇을 톡톡히 하기 시작했다. 친구들, 동료 상인들, 아내의 친구들까지 드나드는 동네 아지트가 된 것이다. 그러기를 7년, 이러지 말고 아예 가게를 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덜렁 시작’한 것이 지금의 가게. 낮에 옷장사가 끝나면 내려와, 3천, 4천원의 실비로 맥주를 파는 이 밤의 가게가 그에겐 장사라기보다 ‘보람된 취미’ 혹은 ‘손님과 맺은 약속’이다. “다 잊어버리고 살아도 누구든지 자기 애창곡이 있어요. 그걸 매치해서 틀어주면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있고, 그 시절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시라도 행복해하고. 그런 걸 보면 같이 즐거워요. 약속을 했어요. 나중에 하얀 머리로 덜덜덜 떨면서 들어와서 ‘어이구, 아직도 있냐’ 그러자고. 앞으로 20, 30년 더 지나면 지금 듣는 노래가 60, 70년도 더 된 노래가 될 건데 그런 노래 들으면서 같이 살자고.” 두런두런 말소리, 음악소리에 지긋한 밤이 익는다.
꿈꾸는 소년이 들려주는 평화의 음악
대학로, 샘 쿡 Sam Cooke
“샘 쿡 노래를 좋아해요. 부드럽고 로맨틱해서 마음이 편해져요. 여자들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이 노래의 느낌대로만 마음을 갖는다면 분명 사랑받을 것 같아요.” 옛 가수의 이름을 딴 샘 쿡(Sam Cooke)은 참 다정한 가게다. 오래됐고 투박하지만 쓰다듬고 싶고 쉬어가고 싶은 따스한 느낌이 있다. 일일이 손으로 만든 벽과 바닥, 테이블과 의자를 통해 묘한 감정이 전해진다. 누군가 나무를 잘라 못질을 하고 색을 칠하고 기름을 먹여, 닦고 또 다듬고 매만졌을 것이다. 알고 보니 괜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을 손수 만든 주인장 이형춘씨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해서 만들면 만든 사람의 감정과 느낌이 물건을 통해 전해져요. 기성으로 파는 물건도 많지만 그런 것들은 경직돼 있고.” 언뜻 30대 후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는 자신이 마흔다섯살이라고 했다. 그러나 ‘가을바람이 산들거리는 시골길을 걷는 듯한 쓸쓸함’ 같은 표현을 하는 그는 실제 나이와 상관없이 ‘꿈꾸는 소년’ 혹은 ‘평화를 얘기하는 히피’처럼 보인다. 샘 쿡이 이 자리에 문을 연 지 벌써 8년. 당시 모델 일과 연극을 겸하던 이형춘씨가 생활에 도움이 될까 해서 차린 가게는 그의 삶터가 되었고, 300장으로 시작한 판은 어느새 6천장을 훌쩍 넘어섰다. 샘 쿡은 음악을 가리지 않는다. 굵직한 조니 캐시의 목소리에 이어 보사노바, 블루스, 칸초네가 흐른다. “여기서 이건 안 돼, 뭐는 안 돼, 그런 생각은 피하고 싶어요. 흑인 블루스와 월드뮤직을 좋아하지만 클래식, 재즈, 메탈, 사이키델릭 뭐든 있으면 틀어요. 음악에 선은 없으니까. 손님을 배려하고 ‘흘러가는 대로 음악을 틀자’ 생각해요.” 그는 매일 음악을 틀 때 마음을 생각한다. 같은 곡을 틀어도 어떤 마음으로 판을 얹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다. 그의 마음을 실은 음악은 진공관을 거쳐 나무로 짠 가게에 스며든다. 몽롱하고 부드러운 울림이 가게를 가득 메운다. “유명하지 않아도 돼요. 그냥 ‘대학로 뒷골목에 조그만 LP 트는 바’로 사람들 마음에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맥주 한잔을 마시고 가도 음악 한곡 듣고 위로를 받는다면 전 행복해요.” 샘 쿡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그런 가게다.
흔한 곡에 감춰진 진짜 소리를 알기까지
신사동, 트래픽 Traffic
양주를 마시던 넥타이맨들이 이연실의 노래 한 자락에 열렬한 박수를 보낸다. 호세 펠리치아노, 프랑코 시모네의 목소리가 그 다음을 잇는다. 여기는 신사동 현대고 맞은편 골목 트래픽(Traffic). 앞선 세 가게와 일부를 공유하는 동시에 어떤 가게와도 다른 가게다. 6천여장의 판을 ‘대여’해주고도 1만5천여장의 판이 빽빽하고, 40·50대를 주 손님으로, 다양한 음악을 틀지만. 뭐랄까. 시원하다. 버즈의 김영준씨는 ‘정말 죽을 때까지 들어도 다 못 듣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나면 굉장히 자유로워지는 경지가 온다고 했다. 트래픽 주인장 오영길씨가 바로 그렇다. 가게가 크고 천장이 높아서기도 하겠으나, 그가 트는 음악을 듣고 있으면 굉장한 쾌감이 온다. 손님들이 신청하는 곡과 그가 얹는 곡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지만 그는 그 간극을 없애버린다. “고집을 많이 버렸어요. 예전에는 ‘이런 좋은 곡도 있으니까 좀 들어봐라’ 했는데 이젠 내 자신이 손님들이 좋아하는 곡을 좋아하게 돼요. 전에 음악실 다닐 때 <The Sound of Silence> 나오면 ‘어우, 저거 또 들어왔네. 지겨워, 지겨워’ 했는데 한 7년쯤 지나서 그걸 듣는데 이게 정말 기가 막힌 곡이라는 생각이 들데요. <Saddest Thing>도 그렇고 다 흔한 곡인데도. 그러니 손님들이 그렇게 찾지.” “무궁무진한 게 음악이에요. 제일 좋아하는 거 한곡 틀라고 하면 못 골라요. 지금 내가 A라는 곡을 듣고 싶다면 그게 가장 좋아하는 곡인 거예요.” 노무사 일을 십몇년 하다보니 문득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회의가 들었다고 했다. ‘좀 있으면 50 바라보는데 좋아하는 거 하면서 살다 가자’ 싶었다고. 아내에게 “나 스트레스 받아서 금방 죽는 것보다 오래 사는 거 보고 싶지? 가게 하나 내자” 했더니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집 팝시다.” 그렇게 하게 된 가게. 일요일, 아내와 근처 산에 올라가 막걸리 한잔 마시고, 내려와 오겹살 구워먹고 집에 오면 아이들이 <여걸 식스>와 <개그콘서트> <엑스맨>을 녹화해 둔다. 보고 한바탕 웃으면 일주일간 쌓인 피로가 풀린다. 그리고 다시 음악을 튼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각기 다르게 자리할 음악을, 툭툭 흘려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