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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비굴한 정의와 착한 폭력 사이
김나형 2006-09-01

누군가가 라디오에 상담을 해왔다. 잘생기고 로맨틱한 남친의 이면을 봤다는 거다. 은행 직원이 사근사근하지 않게 응대하자 남친은 큰소리를 냈다. 직원이 여전히 싸늘하게 굴자 “당신 이제 큰일났어. 각오해”라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때렸다. 한 가닥 하는 그의 아버지는 은행에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해왔다. 그녀는 남친이 아버지의 권력으로 위세를 부리는 게 당혹스러웠다. 반면, 내겐 좀 다른 대목이 다가왔다. “당신 이제 큰일났어. 각오해.” 단순한 감정 폭발이 구체적인 보복으로 선회하는 순간이다. 만약 그가 아버지 아닌 자신의 힘으로 상대를 가격했다면 어땠을까. 그건 괜찮았을까?

일전에 동생과 옷가게에 갔다. 생일인데 봐둔 옷이 있다기에 사주러 간 것이다. 한데 직원이 상당히 무례했다. “입어봐도 돼요?” “안 돼요.” “클까봐 그러는데.” “아, 그럼 사갔다가 바꾸러 오시든지요.” “얘가 오늘 지방에 갈 거라 당분간 바꾸러 올 수가 없어요.” “그건 제가 알 바 아니고요.” 나는 욱 하는 성질머리를 드러내고 말았다. “아, 진짜 싸가지 없네. 가자, 다른 집에서 사줄게.” 그러자 직원이 길길이 뛰기 시작했다. 요약하면 ‘너 방금 싸가지라고 했냐? 이리 와봐. 오늘 가게 문 닫고 한판 해보자’는 거였다. “내가 틀린 말 했나요? 이런 식으로 물건 파시면 사고 싶겠어요?” 따위의 대거리를 하다, 뭐하는 짓인가 싶어 접고 나오는데, 어깨 하나가 다가왔다. 그는 “좋은 말로 할 때 가라”고 했다. 겨우 가라앉힌 화가 확 도로 올라왔다. 저건 또 무슨 위협의 몸짓인가. 너희들이 이때까지 좋은 말은 한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래, 그 이상이라면 뭘 어쩌겠다는 거냐. 패기라도 할 모양이지? 순간, 단순한 분노의 감정이 보복에의 결의로 번졌다. “어, 그러세요? 저도 그럼 장사 못하시게 해드릴게요. 학교 홈페이지에 띄워드리든지 신문에 실어드리든지.” 학교 앞에 늘어선 옷가게에서 이런 일은 종종 있는 모양으로, 피해자가 학교 홈페이지에 그를 ‘고발’하여 장사를 접은 집도 있다. 접지는 않아도 속이라도 썩겠지. 너희도 한번 띄워주마. 어깨는 뜨끔했는지 “뭐? 너 힘 좀 있냐? 이리 와봐” 라며 위협의 강도를 높였다. 됐거등?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가냐? 각오하고 있어. 불매운동해줄 테니까.

씩씩거리면서 언덕을 올라오는데 자신이 한심해졌다. 안 사면 되는 거지, 아무 말 말고 그냥 나올걸. 생일선물 사준다면서 동생 앞에서 별 쇼를 다 했네. 저들도 온갖 사람 상대하느라 척박해진 인생일 텐데.

친절함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에겐 업무다. 업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손님은 성토할 자격이 있다. 윗선에 고해 해고시킬 수도 있고 불매운동으로 영업에 타격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생업을 박살낼 만큼의 자격이 내게 있는 건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권리의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 몇분만 손가락을 놀리면 됐겠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결국 사례 고발을 하지 못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건 내가 그냥 넘어간 탓에 누군가가 같은 꼴을 당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나, 그렇다 해도 확신은 여전히 서지 않는다. 내가 길길이 뛰며 정의감을 발휘해야 할 적(敵)이 옷가게 점원, 식당 서버, 은행 직원 같은 사람들일까? 혹, 더 큰 적에는 비굴하게 굴면서, 그들은 내 능력으로도 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다시는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유독 잔인해질 수 있는 건 아닐까. 정의와 폭력이 나는 아직도 잘 구분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