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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시즌드라마 만들어도 될까요?
김소민 2006-08-24

‘CSI’와 같은 사전제작물 국내서도 조심스런 기지개 ‘에이전트 제로’ ‘궁2’ 등 준비 제작·시장여건 미흡 성공 미지수

미국식 제작 시스템인 ‘시즌제’가 한국 드라마에도 적용될까? 외주제작사들이 타진 중이다. 〈에이전트 제로〉 〈궁 2〉 〈무적의 낙하산 요원(신입사원 2)〉 등. 제작사들은 적어도 이 드라마들이 시즌물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식 시즌제는 보통 12~24개 에피소드를 예닐곱달 동안 일주일에 한 차례씩 내보낸 뒤 6~7개월은 재방송한다. 재방송 기간에 기존 주인공이나 설정을 바탕으로 새로운 에피소드를 만들어 다음 여섯달 동안 내보내는 것이다. 〈CSI: 과학수사대〉 〈섹스 앤 더 시티〉 등의 뒤에 숫자가 붙는 까닭이다. 시즌제 도입은 속편을 계속 만든다는 의미를 넘어서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를 드러낸다. 사전제작이 이뤄져야 하고, 탄탄한 에피소드를 오래 끌고갈 만한 작가들이 모여야 한다. 드라마를 만들어 팔 만한 충분한 시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시즌물!…글쎄=미국식 시즌물의 틀에 꼭 들어맞는 것은 〈연애시대〉를 만든 옐로우필름의 〈에이전트 제로〉 정도다. 손예진, 설경구에 주인공 두명을 보태 한 시즌당 24부작을 내년 상반기부터 내보낼 계획이다. 모두 사전제작하며 6개월 동안 쉬고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5시즌을 끌고 간다. 한국에선 첫 시도다. 영화 〈실미도〉 〈한반도〉 등의 시나리오를 쓴 김희재 작가를 중심으로 〈올드보이〉 〈야수와 미녀〉의 각본을 맡은 황조윤 작가, 〈주먹이 운다〉의 전철홍 작가가 이야기를 짠다. 수사물이지만 멜로 분위기를 보탤 예정이다.

나머지는 엄밀히 미국식 시즌물이라고 말하긴 모호하다. 내년 1월 문화방송에서 내보낼 예정인 〈궁 2〉는 〈에이전트 제로〉처럼 애초부터 시즌물로 기획되지는 않았다. 주인공이 그대로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외주제작사 그룹 에이트의 배종병 기획 피디는 “〈궁〉에는 펼쳐나갈 만한 이야기가 풍부해 궁 3, 궁 4로 이어질 여지가 많다”며 “〈궁 2〉도 60% 이상 사전제작한 뒤에 방송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달 6일 방송이 나갈 에스비에스 드라마 〈무적의 낙하산 요원〉(이용석 연출, 이선미·김기호 극본)은 드라마 〈신입사원〉에서 주인공 배우와 캐릭터, 주제만 이어받았다. 돈도 인맥도 실력도 없는 주인공(문정혁)이 얼떨결에 취직해 겪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배경은 대기업에서 국가 정보기관으로 바뀌었다. 〈무적의…〉를 만드는 제작사 엘케이의 최병국 이사는 “취업난이 사회적 이슈가 될테니 신입사원들의 이야기를 배경은 바꾸더라도 이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왜?=〈에이전트 제로〉를 추진하는 오민호 대표는 “사전제작으로 장기 시리즈물을 만들려면 보통 드라마보다 적어도 2.5배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럼에도 밀어붙이는 까닭은 그만큼 드라마 시장이 넓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방송사의 광고수익만 보고 큰돈을 투자할 수는 없다. 케이블, 포털, 디엠비 등 국내 미디어 환경이 다양해졌으며 해외 시장도 넓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할리우드의 큰 배급사와 접촉해 아시아 시장 전체에 판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오민호) 이에 앞서 옐로우필름은 〈썸데이〉를 방영권만 지상파가 아닌 케이블채널 오시엔에 팔아 11월에 내보낸다.다른 제작사들이 ‘변형된 시즌물’을 내놓는 데는 전편의 고정 시청자를 안고 갈 수 있다는 기대도 한몫한다. 소재 고갈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이야기를 넓혀가면서 기존의 세트 따위를 이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시즌제 굳히기?=작가들이 뭉친 제작사 에이스토리는 고민중이다. 고려시대 국제항을 배경으로 당시 수사대의 이야기를 다룰 사극 〈벽란도〉도 시즌물로 구상중이지만 아직 확정하진 않았다. 〈종합병원 2〉도 옛 〈종합병원〉의 주인공 캐릭터를 끌고 갈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지 정해지지 않았다.

최완규 대표작가는 “장기적으로 드라마의 질을 높이고 외주제작사가 안정된 기반을 얻으려면 시즌제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성공한 드라마의 브랜드로 이야기를 확장해 간다면 그만큼 부담은 주는 셈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 미국처럼 튼튼한 배급망이 없는 상태에서 작은 시장을 두고 사전제작을 하면 위험이 크다”며 “이밖에 시청자들의 습관, 광고 시장 등이 미국과 달라 완벽한 시즌제를 도입하는 건 현재는 무리”라고 말했다. 배종병 피디는 “시즌물은 한 에피소드가 하루에 끝나 언제 봐도 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시청자들은 한주에 두차례씩 이어지는 이야기에 익숙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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