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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하는 <괴물>의 불친절함을 지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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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단도직입적으루다가 얘기해보자. 과연 <괴물>은 지금까지 전 언론으로부터 일제히 만장일치로 쏟아진 극찬을 먹어마땅할 드높은 완성도의 대왕걸작인가. 결론부터 말해, 필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뭐, <괴물>의 이런저런 안타까운 점들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대각선으로 누워서 자야 할 만큼 협소한 본 코너의 지면에선 불가능한 관계로, 간단한 거 하나만 얘기해보자.

필자가 보기에 <괴물>의 초반 중 최대의 분수령이 되는 대목은, 박강두(송강호)가 순경에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는 얘기를 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이 대목에서, 워낙에 덜떨어진 행동을 일삼는 캐릭터인 박강두는 엄청나게 버벅이며 이 얘기를 하고, 기다렸다는 듯 그의 주장은 깨끗이 묵살된다. 한번쯤은 안 그래봐도 좋으련만 말이지.

그런데 이 장면에서 박강두가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을 보자. 이 휴대폰은 삼某전자에서 지난 2003년 출시한 SCH-X800라는 모델로서, 이 모델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휴대폰들과 마찬가지로 발신자의 번호와 전화 온 시간을 표시해주는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박강두 또는 이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던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딸의 번호와 전화 걸려온 시간이 찍혀 있는 휴대폰 액정창을 순경에게 들이밀기만 했더라면, 주장이 묵살되는 불상사는 발생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결국 박강두의 가족은 독자적으로 길고도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흔해터진 경구 하나를 떠올리지 못한 과오에 대해 이 가족이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했던 것이다. 아….

뭐, 잘 만든 영화에 웬 쓸데없는 꼬투리 잡기냐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하나 문제는, 이러한 대목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그 빈도를 더해간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 ‘만화적 감수성’, ‘영화적 과장’ 같은 것들과는 거리가 먼 오히려 ‘무리수’라고 불러야 옳을 그러한 설정들이었던 바,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애써 노력하여’ 영화를 이해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몰입을 방해한다. 물론 <괴물>은 잘 만든 영화다. 지금까지 한국에는 없었던 독창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여러 흥미로운 점들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건강’하다. 하지만 이것이 <괴물>에 쏟아지는 그 모든 무조건적 찬사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괴물>은 분명히 많은 약점도 동시에 지닌 영화니까 말이다. 한데, 평소엔 그리도 냉철하고 이지적인 자세를 부러져라 꼿꼿이 유지하던 평자들은 다들 어디로 가고, 이리도 일사불란한 극찬만이 난무하고 있는가. 어쩌면 해외에서 역수입된 호평을 먹고 기형적으로 팽창한 국내 언론의 과열된 호평이야말로, 미국산 포르말린을 먹고 자란 <괴물>의 괴물과 가장 닮아 있는, 진정한 괴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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