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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너무 낯설었나? 시청률이 진면목 몰라주네
남은주 사진 정용일 2006-08-17

벤치에 앉아있는 김민정과 바닥에 앉아있는 엄태웅·김성재(왼쪽부터)가 촬영 현장에서 대본 연습을 하고 있다.

화려한 캐스팅·유명 피디 불구 진부한 드라마문법 깼더니 처절한 시청률 “안 되면 엄태웅이라도 벗기죠”

SBS드라마 ‘천국보다 낯선’ 촬영현장

에스비에스 월화 드라마 〈천국보다 낯선〉의 추락은 이변이었다. 김민정 이성재 엄태웅이 출연하고 〈봄날〉을 연출한 김종혁 피디의 작품으로 방영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드라마가 시청률 3.5~4%에 주저앉아 버렸다. 지난 10일 〈천국보다 낯선〉 촬영현장을 찾아 남은 드라마의 성패를 가늠해 보았다.

오빠는 풍각쟁이야

초반부 〈천국보다…〉의 약점은 집중력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줄거리와 구성의 밀도가 떨어지는 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주인공 3명의 캐릭터를 구축하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뒤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을 찾는 윤재(이성재), 죽은 언니를 대신해 가수가 되지만 소속사 사장에게나 아버지에게나 이용만 당하는 희란(김민정),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병원비를 윤재에게 떠넘기려고 입양서류를 조작하는 산호(엄태웅)는 모두 지대한 결핍과 갈등을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6회, 어머니가 처음으로 윤재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대목을 촬영하고 있던 김종혁 피디는 문득 이렇게 말을 꺼냈다. “근본적 결핍을 지닌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초반부에 셋의 갈등을 살살 달구다 어느 시점에선가 끓어 넘치게 하고 싶었다. 그래도 시청률이 이 지경이니 고민이 된다.”

드라마 〈불량가족〉처럼 요즘 드라마의 소재는 유사가족으로까지 확대됐다. 〈천국보다…〉는 거기서 한발짝 더 나갔다. 윤재는 가족이라고 주장하는 산호에게 속지만, 그래서 정작 위안받는 것은 윤재다. 산호는 가족을 버리지 못해 안달하면서도 어머니에게 전화로 〈오빠는 풍각쟁이야〉라는 노래를 불러주고, 병원 앞마당에서 어머니를 업고 달랜다. 주인공들은 모두 눈앞의 가족을 거부하면서도 가족을 찾아 헤맨다.

이처럼 〈천국보다…〉는 주인공들을 호락호락 공인된 가족의 식탁에 앉히지 않고, 개개인들의 성장을 위해 먼길을 떠나게 만든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형편없는 시청률로 외로운 풍각쟁이가 돼왔다.

두 가지 길

김 피디가 분석하는 패인은 이렇다. “아무리 진실이더라도 시청자들이 원치 않는 이야기,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몰입을 방해하는 미완성 장면, 상투적인 코미디들을 들 수 있다. “내 색깔이 날 망하게 하는구나”라고 한탄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김 피디의 ‘결벽증’도 한몫한다. “모던록 계열의 주제곡을 정하면서 가사를 뺐다. 상업적 속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서 못 참겠더라.”

이날 일산의 공원에서는 밤늦도록 엄태웅, 이성재, 김민정이 한밤중에 말뚝박기를 하며 시시덕거리는 장면을 촬영했다. 카메라는 고개를 처박고 좋아하는 엄태웅, 수줍고도 두렵게 시선을 비켜가는 이성재와 김민정의 표정을 잡기 위해 3시간 동안 고군분투했다. ‘삼각관계로 인한 갈등’이라는 익숙한 멜로라인을 만들지 않고, 이들 셋을 한데 뭉쳐 놓고서 사랑에 빠질 때 보이는 서로간의 미묘한 차이를 잡겠다는 제작진의 의욕을 엿보게 하는 현장이었다.

“주인공의 비밀이나 선과 악의 대립에 매달리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지 않다. 9~10회 정도에서 거짓으로 만든 가족관계는 일찌감치 까발리겠다. 문제는 그 이후다.” 김종혁 피디의 말이다.

“‘가족 아니면 멜로’라는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부수고 근원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싶다”는 처음의 기획의도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김 피디는 1분도 촬영장을 떠나지 않는 엄태웅에게 말한다. “우리끼리 자뻑하며 살지 뭐. 나는 자기가 엄마 업고 웃고 떠드는 장면이 제일 좋더라구. 가슴이 따뜻해지고, 우리 드라마가 뭐 하는 드라마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같고.” 그러다가 또 이렇게도 말한다. “우리가 맷집이 과연 그렇게 좋을지 모르겠어. 3.6%로 계속 두들겨 맞다 보면 누구를 벗겨서라도 시청률 좀 올려보고 싶을 텐데.” 모두 엄태웅 쪽을 보고 씩 웃지만, 이 말을 듣자마자 그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버렸다.

“상상 이상의 것 보게 될 겁니다”

8년 만에 안방 찾은 이성재

-98년 〈거짓말〉 이후 8년 만에 드라마에 돌아오는 작품으로 〈천국보다 낯선〉을 골랐다. =처음 대본을 보았을 때, 작품의 느낌이 좋았다. 남녀간의 사랑이나 트렌드에 쫓기지 않는 드라마라는 인상이었다.

-윤재 캐릭터 때문에 연기력 논란도 있었다. =입양아에 1회부터 친구와 애인이 배신하는 등 처한 상황은 불우하고도 불운하다. 하지만 어둡게 무게잡으며 가기 싫었다. 어두운 인물도 희로애락이 있고, 똑똑한 변호사도 어리숙할 때가 있다. 전형적인 인물상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주연을 맡았던 〈공공의 적〉 〈신석기 블루스〉조차 내 캐릭터보다는 작품을 보고 뛰어들었다. 내 캐릭터는 이거다 하면서 미리 명확하게 알고 가본 일이 없다. 작품이건 캐릭터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무엇과 만나게 되더라. 〈천국보다…〉에서도 늦었지만 얼마 전 그런 순간을 만난 듯했다.

-시청률이 부진한데 배우들의 의욕에 영향을 미치진 않나? =당황스럽기는 했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파급력이 적다는 사실 때문에. 요즘에는 5%나 1%나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른 배우들이나 스태프들도 별반 구애받지 않고 촬영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장담할 수 있다. 나중에는 상상도 못한 좋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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