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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개 소녀의 반올림, <다세포소녀>의 두눈박이, 이은성

4월 초 모 촬영장에 박찬욱, 김지운 감독 등이 모였다. KBS 청소년드라마 <반올림>에서 괴짜 전교 1등 노릇으로 주목받은 은성을 보기 위해서였다(이은성이 영화의 중요한 반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제목을 밝힐 수 없다는 점 양해해주시라). 이 영화의 감독은 그저 이은성이 ‘다리가 길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어디 그 바쁜 감독들이 다리만 보기 위해서 모인 것일까마는 아무튼, 그들은 고3이라고 도저히 보기 어려운 화려하고 섹시한 분위기의 긴 다리 소녀를 보았다. 몇달 뒤 공포영화 <디데이>에서 차분하고 이지적인 재수생 보람 역의 소녀가 주목받았다. 한주 뒤에는 이재용 감독의 <다세포소녀>에 ‘시발’을 외치며 오빠를 두들겨 패는 보조개가 예쁘게 팬 터프한 소녀가 선을 보였다. 이들 모두가 똑같은 고3 학생이라는 건 꽤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먼저 동일 인물인가에 대한 확인. 보조개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차분한 재수생이 정녕 당신이었던가. “웃는 장면이 없어요. 세번 있대요. 그때 조금 보여요. 편집기사님이 세고 계셨어요. 울어도 보조개가 생겨서 오해를 받아요. 웃지 말라고.” <디데이>에서 사감의 부당한 체벌에 아무런 항의도 안 하는 모범생보다 <반올림>에서 남자 선도부 선배에게 부당한 벌서기를 항의하던 모습이 더 맞지 않던가? 먼저 쑥스러운 해명. “아, 창피해. <반올림> 얘기는 왜 하세요. 지금이랑 연기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젖살은 퉁퉁, 눈은 부리부리, 대사는 달달 교과서 외우듯…. 성격이 직선적이에요. 그런 거 보면 못 참아요. 오지랖이 넓다고 할까. 학교 (제대로) 다녔어도 그랬을 거예요. <반올림> 때문에 내가 전교 1등인 줄 사람들이 알아요. (사실은 아니지만) 굳이 부정 안 해요. (웃음) ”

평소에도 전교 1등 연기가 자연스레 체화되어 있는 듯했다. 이은성의 미니홈피에서도 연기력의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천국에 함께 갈 사람이 생겼다.’ 누구냐고 물으니 특정 인물을 지칭한 것은 아니라며 쓰지 말아달라고 했다. 천국에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굳이 그렇게 썼다고 했다. ‘지목 안 하고 지목한 척한다’는 설명. 많은 친구들이 그 주인공을 자기 자신이라고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은성의 즉흥 변주가 이어진다. “천국은 그닥 안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여기가 천국 아닌가요.” 연기를 잘하지만, 연기자가 된 건 운명의 장난에 의해서였다. 모 일간지의 보도와 달리 부모에게 떼를 써 기획사에 들어간 건 아니라고 했다. ‘친구따라 강남’에 갔고 연기지망 친구는 떨어지고 자신이 뽑혔다. “배우의 배자가 아닐 비자에 사람 인 변”이라 ‘슬픈 운명’이라고 말할 때는 묘한 우쭐함과 근심이 함께 새어나왔다.

운명도 좋지만 고3인데 많은 영화를 찍다 보면 공부가 힘들지 않을까. “두 마리 토끼 쫓다가 다 놓치느니, 뭐 하나 잘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반문. 고고학자와 배우를 동시에 꿈꾸는 이은성의 어휘는 독서실에 갇혀 있는 <디데이>스러운 학생의 어휘가 아니라 읽고 쓰고 꿈꾸기를 좋아하는 그리고 자기에 대해 잘 아는 대학생의 어휘다.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와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즐겨 읽는다. <디데이>에서 사감이 압수한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도 좋다. 호오가 뚜렷한 게 영화도 좋아하는 것만 할 것 같다.

“<다세포소녀>에서 두눈박이만큼 자기를 잘 아는 캐릭터가 있나요? 어린 나이에 성전환 수술하려고 적금 붓고 하는 게 마음에 들어요. 걔가 어떤 선택을 마지막에 내리는지는 영화에 안 나오지만 이런 걸 통해 사람들이 다르게 보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설명은 영화 선정을 기획사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하는 배우에게서나 나오는 것 아닌가. “제 선택이 90이에요. 신인이 웃기죠. 뜨기 위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위해 연기하고 싶어요. 거절한 거 많아요. 마음에 불꽃이 일어야 해낼 수 있는 거잖아요. 매니저 오빠는 속상해하지만.” 소신과 독선 사이에 철학이 있을 것이다. “현장에서 부딪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나요. 전 아는 게 없어 쩔쩔맬 때 속상해요. 하지만 남들 연기를 보고 배웠으면 흉내냈을 거예요. 전 그릇이 작아요, 깨질 것 같아요.”

모든 게 바쁘게 지나가는 이 시대가 싫다고 했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더 좋았을걸’이라 중얼거리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좋아하는 영화로 꼽고, 옆사람 잘해주기도 벅차 친구가 없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게 영락없는 ‘애늙은이’ 아닌가. 사진에 찍힌 자신을 보며 ‘사기야, 사기’라고 겸손 반 자랑하며 웃을 때야 물론 낭랑 18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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