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자동차 액션 영화를 만드는 데 예전만큼 공력이 투입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일일이 사람 손으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 자동차영화, 그중에서도 레이싱영화는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영화기술의 집대성이었다. 1966년 존 프랑켄하이머의 손에서 태어난 포뮬러원 레이싱에 관한 영화 <그랑프리>는 이런 레이싱영화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아날로그 액션 영화의 금자탑이다. 실제 포뮬러원 머신에 올려진 슈퍼-파나비전70으로 촬영한 레이서 눈높이의 시점숏을 중심으로 감독의 전매특허인 와이드숏과 다양한 줌, 클로즈업 등의 촬영기술과 영상 디자인의 선구자 솔 바스와의 협력으로 탄생한 화면분할 등의 편집, 모리스 자르의 사운드트랙의 결합은 더 이상 기술적으로 다다를 곳이 없는 3시간짜리 화려한 기계들의 오페라를 만들어낸다. 특히 시점숏의 스펙터클은 오늘날 비디오게임에 익숙한 세대마저도 입이 저절로 벌어질 만큼 강렬하고 극사실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정점으로 프랑켄하이머의 경력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기술은 정점에 달했으나 작가정신이 그에 미치지 못했기에. 원작이 70mm인 슈퍼-시네라마로 상영됐던 만큼 어떤 비디오 포맷도 원작의 박력을 쫓아가기에는 버거운 작품이지만, 이번에 2.20:1로 HD 트랜스퍼된 화면은 원 화면비율을 충실히 재현하고 화질 보정에 많은 정성을 기울였기에 대화면을 갖춘 홈시어터라면 원작의 느낌을 어느 정도 살려 볼 수 있을 정도로 우수한 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카데미 음향상과 음향효과상을 동시에 수상할 정도로 뛰어난 사운드 디자인을 5.1 채널로 리믹싱한 서라운드 사운드는 약간 음압이 낮다는 느낌에도 역동적인 화면 위에서 레이싱 서킷의 리얼리티를 체감적으로 극대화해준다. 부록으로 수록된 다섯편의 다큐멘터리는 제작과정과 포뮬러원 경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감독으로서 정점에 서 있던 프랑켄하이머가 어떻게 제작을 지휘했으며 어떤 기술로 촬영했는지에 대한 증언들은 기술적 차원에서 매우 흥미롭다. 또 솔 바스가 참여한 타이틀 디자인이 독특한 화면분할 편집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에 대한 증언 역시 한번쯤 필청해볼 부분이라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는 이제는 역사책으로 사라져 간 60년대의 전설적인 포뮬러원 드라이버들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필 힐, 그래험 힐, 로렌조 반디니, 잭 브라밤, 짐 클라크, 브루스 맥라렌 등등. 이들 중 클라크, 반디니, 맥라렌 등은 <그랑프리>의 발표 이후 영화 속의 장-피에르(이브 몽탕)와 마찬가지로 레이싱 서킷에서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