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공연
친절한 클라라씨의 복수, <그녀가 돌아왔다>
김현정 2006-08-16

8월13일까지/ 정보소극장/ 02-745-0308

시민 거의 전부가 빚더미를 떠안고 있는 작은 지방도시에 엄청난 갑부가 된 노부인 클라라가 돌아온다. 그녀는 연인 알프레드에게 배신당하고 이웃에게도 냉대를 받으며 임신한 몸으로 고향을 떠났고, 혼자 낳아 입양보낸 딸아이는 일년밖에 살지 못하고 죽었다. 복수를 하고자 하는 클라라는 전 재산을 고향에 기증하겠다고 선언한다. 다만 알프레드의 시체를 대가로 받을 수 있다면. 그날 이후 도시는 아직 손에 쥐지도 못한 부(富)를 상상하며 사치로 흥청거리고, 알프레드는 출구없는 미로에 갇힌 새앙쥐처럼 궁지에 몰린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을 각색한 <그녀가 돌아왔다>는 이처럼 복잡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공연시간은 한 시간에 불과하다. 영화 <고독이 몸부림칠 때>의 이수인 감독은 연극무대로 복귀한 첫 작품을 각색하면서 과감하게 서사를 걷어내고 다만 그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지극한 사랑인 줄 알았지만 거짓과 배신으로 끝나버린 관계, 탐욕만을 품은 사람의 본성, 애정과 증오가 뒤섞여 빚어낸 수십년의 회한. <그녀가 돌아왔다>는 껍데기를 들추고 들추어야만 닿을 법한 이 밑바닥으로 축약되고 조각난 대사만 가지고 과감하게 돌진한다.

그 때문에 <그녀가 돌아왔다>는 신경을 쓰지 않으면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지만, 대사와 설명의 여과를 거치지 않기에 곧바로 받아안을 수 있는 정서를 던져주기도 한다. 클라라가 떠나는 플랫폼을 둘러싸고 내치듯이 그녀를 기차에 태운 이웃들은 같은 장소에서 알프레드를 둘러싸고 그의 도주를 막는다. 아쉬워하는 듯 밀어내고, 환송하는 듯 억류하는 그들의 대사가 좁은 무대에 메아리치며, 독일 소도시의 환멸을 순간이동처럼 직접 퍼뜨리는 것이다. 연극이 아니었다면 이런 과감한 각색은 어려웠을 것이다. 다소 난해한 <그녀가 돌아왔다>는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지만, 무대가 아니면 받아들이기 힘든 긴장을 경험할 수 있는 공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