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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솔직함의 경제학

사람과 사귀는 나의 오랜 전략은 그저 솔직해지기다. 나의 이렇고 저런 세계에 함께 젖기로 한 이들과는 친분이 꽤 오래 지속된다. 부작용도 있다. 속없는 푼수 같은 이미지만 남길 때가 있다. 이런 탓인지 최근에 찾아간 암스테르담, 아니 네덜란드는 솔직함을 국가적 자산(혹은 그냥 큰돈)으로 영리하게 만들었다고 여겨졌다. 그곳은 마약과 매춘이 합법화한 곳이다. 예쁜 운하를 끼고 있는 양편에 당당하게 몸을 팔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이사이 환각성분이 든 커피를 파는 카페가 끼어 있다. 파리의 몽마르트르 아랫녘이 그렇듯 축축한 느낌은 이곳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훨씬 명랑해 보였다. 다양한 형태의 관광객으로 들끓은 풍경이 보탬이 됐을 것이다. 어차피 존재하는 것, 차라리 양성화해서 보호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기로 했을 때, 왜 논란과 진통이 없었을까 싶다. 솔직한 게 더 효율적일 것이라는 목소리가 더 컸기에 합법화가 가능했으리라. 그 대가로 암스테르담은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자유도시의 이미지를 얻었다.

반 고흐 박물관의 솔직함은 나 같은 한국인에게 충격적이다. 렘브란트와 더불어 국보급 자랑거리인 고흐(를 포함한 인상파)가 일본의 우키요에(채색 목판화)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광고’하고 있었다. 전시실마다 말로 설명할 뿐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게끔 영향받은 일본 판화나 도자기를 고흐의 작품 옆에 나란히 놓아두었다. 드로잉과 색채감각, 구도 잡기와 대상을 대하는 철학까지. 우리라면 감추면 감추었지 이렇게까지 까발릴까 싶었다. 상설전시보다 더 자극적인 건 ‘Wonders of Imperial Japan’이란 기획전이었다. 메이지 시대의 공예품들이 뽐내는 섬세함과 정교함, 그리고 화려함에 눈이 동그래졌다. 박물관에서 낸 책은 ‘지금 복제하려 해도 할 수 없는 미스터리’라는 표현을 써가며 칭송하고 있었다.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메이지 시대에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수준을 뛰어넘은 현대 공예품들이 지금 나오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곳은 <반 고흐와 일본> 등 연구서적도 부지런히 펴내며 박제된 박물관이 아님을 웅변하고 있었다. 평일인데도 밀려드는 관광객의 물결이 대단했다.

박물관에서 구입한 책과 인터넷 뒤지기 등으로 궁금증이 제법 해소됐다. 더불어 고도의 상술일 수 있다는 흔적을 발견했지만 한번 고개를 든 암스테르담에 대한 애정은 굳건했다. 이어지는 몇 가지 추측들. 메이지 시대의 공예품은 국가가 적극 장려한 수출품이었다. 장인의 자의식보다 수요자의 기호에 맞춰 세계박람회의 화제가 되는 것이 목표였고, 전체 수출 물량의 10%를 차지하며 오늘의 전자, 자동차 같은 구실을 했다. 그러나 아르누보, 아르데코 같은 세계적 흐름과 동떨어져가다 결국 외면받기에 이르렀고, 다이쇼 시대에 이르러서야 작가주의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반면 우키요에는 일찌감치 작가와 소비자의 기호가 적절한 수준에서 만나 오랜 생명을 지속했고, 일본 애니메이션 속으로 흘러들어갔으며, 재패니메이션은 SF 장르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여기에 비추어본 한국영화는? FTA의 희생양으로 국가가 손놓은 수출품이 돼가고 있으며, 작가주의와 대중 사이의 접점 찾기에 지혜로운 봉준호는 SF적 상상력을 끌어들이며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혹시 SF가 한국영화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승부처이자 마지막 단계? 아무튼 재밌는 상상까지 안겨준 암스테르담이 어여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