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 귀가 ‘강행군’ 마약 같은 무대의 불꽃 청춘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누구나 공감할줄 알았는데…”
가요계에 뛰어든 젊은이 4명의 이야기인 문화방송 드라마 〈오버 더 레인보우〉(수·목 밤 9시50분, 연출 한희, 극본 홍진아·홍자람)는 춤과 노래, 이야기가 서로 떠받치고 있다. 10·20대 취향의 드라마이지만 ‘트렌디 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지 않는다. 선과 악의 이분법도 없다. 인물들은 저마다 욕망과 이유를 지닌 채 새파란 청춘을 무기로 연예계의 복마전 속으로 뛰어든다. 그들의 직업은 멜로를 위한 추상적인 배경이 아니다. 희수(김옥빈), 렉스(환희), 혁주(지현우), 상미(서지혜)가 그 속에서 울고 웃고 성장하는 구체적인 현실이다.
이 드라마를 연출하는 한희 피디는 이전에 춤과 노래를 주인공 삼은 적이 있다. 단막극 〈고무신 거꾸로 신은 이유에 대한 상상〉, 미니시리즈 〈내 인생의 콩깍지〉에서 뮤지컬드라마라는 생소한 영역을 보여줬다. 〈회전목마〉 〈신입사원〉 등 정통 드라마를 거쳐 화려한 무대를 다시 찾은 그를 지난 3일 문화방송에서 만났다.
1·2편은 현란한 춤과 힙합 음악이 버무려져 화려했다. 영상은 세련되고 깔끔했다. 하지만 한희 피디는 100년 동안 인파 100만명이 몰린 휴양지에서 부대낀 사람처럼 초췌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에요. 일주일에 하루 집에 들어가요. 춤은 연기도, 찍기도 힘들어요. 대역도 불가능하고. 육체적 정서적 표현이 다 되어야 하니까요. 보통 춤 장면을 카메라 5대가 3번 정도 찍어요. 일일이 확인해서 동작별로 제일 나은 걸 고르고 이어붙여야 하니 미칠 노릇이죠. 그냥 드라마 1분짜리 만드는 데 1시간 걸린다면 이건 10시간이 드는 것 같아요. 앞으로는 춤·노래 장면 많지 않을 거예요. 음악드라마라기보다 갓 20살이 된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에 뛰어드는 이야기니까. 그리고 솔직히 춤을 많이 찍을래야 찍을 시간도 없어요.”
왜 굳이 음악과 춤을 택했을까?
“15년 전 예능국에서 조연출을 했어요. 그때 뮤직비디오도 찍었는데 춤과 노래가 볼거리의 원형질이라고 느꼈죠. 가장 치열한 복마전이 벌어지는 곳이죠. 10대 후반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해요. 하늘같이 떠받들다가 어느 순간 전화 한통 안 하는 곳이 가요계죠. 그래도 아이들은 무대가 마약 같다고 해요. 몇걸음만 더 올라가면 무대에 닿을 수 있을 듯한 아쉬움, 회한 이런 게 느껴지죠. 쇼비즈니스와 가수의 예술적 포부, 팬들의 욕망이 부닥치는 곳이 가요계이고 이를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죠.”
〈오버 더 레인보우〉에는 캐릭터가 지닌 욕망을 긍정하는 시선이 있다. 희수는 댄서 혁주의 애인이지만 인기가수 렉스의 관심도 놓치고 싶지 않다. 혁주의 팔짱을 끼면서도 렉스에게 고양이 같은 눈빛을 던진다. 하지만 그는 악당이 아니다.
“나쁜 편, 착한 편이 확실히 나뉘면 훨씬 쉽죠. 하지만 치열하게 살다보니 경쟁자도 되는 거잖아요. 하다못해 렉스를 상품 다루듯 하는 프라이드 기획사 사장도 ‘걔(렉스)가 망하면 나도 망한다, 나만큼 걔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할 때는 이해가 되잖아요. 20살 평범한 사랑과 무대의 주인공, 모두를 갖고 싶은 욕망이 희수 안에서 부닥칠 수 있죠. 아버지까지 잃으면서 선택한 무대니까요.”
춤·노래 다 해야 하니 배우들에게 부담이 클 법하다. 하지만 김옥빈은 극 중 뉴질랜드 동포라는 설정을 감안해도 가끔 발음이 샌다. 지현우는 춤의 고수라고 하기엔 때때로 엉거주춤하다. 듀엣 ‘플라이 투더 스카이’의 환희에겐 첫 연기 도전이다.
“김옥빈은 눈빛에 야망 같은 게 어리고 춤의 리듬을 타요. 환희는 일관성 있게 캐릭터를 끌고가는 힘이 있죠. 지현우도 옥빈이랑 나이키(한쪽 팔로 땅을 짚고 공중에서 다리로 나이키 상표 모양을 만드는 춤)를 성공했어요. 쉬운 일이 아니죠.”
캐릭터와 직업 세계에 대한 묘사가 꼼꼼하고 전개에 속도가 붙는데도 시청률은 7~8%를 맴돈다.
“텔레비전이 나이 든 매체가 돼 가고 있죠. 30·40대 취향의 드라마가 잘 돼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선택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었어요. 나이 들면 고작 택할 수 있는 게 이사를 분당으로 갈까 일산으로 갈까 그 정도잖아요. 누구나 겪었을 시기니까 공감할 줄 알았어요. 저만의 착각이었나봐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