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기 위해 뭐가 필요할까?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을 던진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행복의 조건을 채우는 일이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일과 닮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어떤 경험주의자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정답이 너무 많고 합의도 잘 안 되니 차라리 ‘무엇을 하지 말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한다고 했다. ‘불행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이렇게 말이다. ‘밑 빠진 독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밑 빠진 독을 어떻게 틀어막을 것인가?’ 이렇게 말이다.
요즘은 이 ‘행복의 도가니’를 채우기 위해 밑바닥을 돈으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돈이 얼마나 있으면 가장 행복할까? 언론은 심심찮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얼마 전 영국의 한 잡지에서 ‘행복을 보장하는 최적의 자본은 20억원’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4인 가족을 기준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행복도가 가장 높은 그룹의 평균 재산이 20억원 정도라는 것이다. 두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왜 2천억원이 아니고 20억원일까? 그리고 월급쟁이가 20억원을 축적하기 위해 몇년이 걸릴까? 첫 번째 궁금증은 기사가 친절하게 해결해주었다. 20억원까지가 돈이 생활의 질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액수이고, 그 다음부터는 한계효용이 급격히 체감한다는 것이다. 그럴듯했다. 로또 당첨돼서 갑자가 부자가 되면 졸지에 자신의 일상이 무의미해져서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않던가.
서울에서 20억원이면 10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10억원을 여유자금으로 굴릴 수 있다. 졸지에 직장을 잃어도 뭔가 시작할 자본이 되고, 임금과 투자소득을 합하면 부모 봉양하고 사교육비 지출하고도, 종종 휴가 때 편하게 해외여행 다닐 정도가 되지 않을까? 돈 자체가 권력은 되지 않아도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윤활유가 되는 액수! 나는 20억원을 모으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임금노동자의 계산법으로 계산을 해봤다. 연 5천만원씩 모으면 40년 뒤에 원금이 20억원이 된다. 부부가 뛰면 20년 걸린다. 물론 평균적인 투자소득을 감안하면 그 기간은 훨씬 단축될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행복의 액수’는 한결 늘어날 것이다. 이런 부수적 조건을 제외하고 임금의 총액으로만 보면 더블로 20년, 싱글로 40년을 연 5천만원씩 모아야 한다. 그래서 결론은 이런 거다. 최소한 연봉 7천만∼8천만원이 되는 사람이 도중에 사고 안 치고 성실히 적립하면 백발을 휘날리며 행복 고지를 점령한다.
그러니 누가 이 계산법을 택할 것인가. 좀더 축적 기간이 짧은 주식, 부동산 기타등등 재테크에 눈을 돌리는 건 당연지사고, 더러 모험가들은 경마, 경륜, 로또, 블랙 잭 등 국가를 상대로 도박을 벌일 생각까지 하는 거 아닌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의 액수’에 미치지 못하니 행복을 위해 일단 돈에 올인하는 것은 참으로 논리적이다. 그들이 ‘불행하지 않기 위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로 질문을 바꾸기 전까지는 말이다.
부르디외는 자본을 경제자본, 문화자본, 사회자본, 상징자본(혹은 육체자본) 등 네 유형으로 나눴다. 경제자본은 돈이고, 문화자본은 학벌이나 자격증 같은 것이고, 사회자본은 인맥 같은 것이다. 그리고 상징자본은 말투나 걸음걸이 등 신체에 각인된 계급적 취향을 말한다. 물론 이 네 유형의 자본은 궁극적으로 돈으로 환산되는 생산에 관계된 자본이다. 한국사회도 요즘은 육체산업, 매너 학교 등이 생겨나면서 상징자본을 자본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수준까지 자본주의 재생산 메커니즘이 진화한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주관적 느낌인 행복은 생산이 아니라 생산된 재화를 소비하는 과정과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그러니 행복은 결국은 자본 자체보다 자본을 행복감으로 돌리는 다른 계산기의 연산 결과이다. 계산법을 바꾸면 20억원이 아니라 10억원을 갖고도 더 높은 행복지수가 나올 수 있다. 나는 이런 계산 능력도 행복의 자산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서 자기만의 계산법을 결정하는 다양한 자질에 ‘존재자본’이란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싶다. 자족의 능력, 낙천적 심성, 해맑은 섹슈얼리티, 공간의 점유가 아니라 장소의 장식을 통해 일상을 가꾸는 감수성, 비교우위가 아니라 수평적 교감을 통해 소통하는 능력, 그리하여 자아의 서사를 재산으로 간주하는 존재감각 등등. 존재자본은 세금도 없고 투자했다 말아먹을 일도 없다. 문제는 존재자본을 예치해주는 은행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어찌하랴! 당분간 존재자산가들끼리 금융거래를 트고 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