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역사 상상력으로 채우고 강대국관계 등 갈등 풀어넣어 능력보다 핏줄 의존 ‘전근대적’
방송을 시작한 지 한달 보름여 만에 문화방송 드라마 <주몽>(극본 최완규·정형수, 연출 이주환·김근홍)이 시청률 40%를 넘나들고 있다. 에이지비닐슨 자료를 보면, <주몽>의 시청자 가운데 28.9%가 30대다. 50대가 주축인 <연개소문>보다 주시청층이 젊은 편이다.
옛날 옛적에…=<주몽>은 무협물을 닮았다. 애초에 제작진은 이 드라마가 역사적 사실을 복원하는 정통 사극이라기보다는 픽션에 방점을 뒀다는 점을 밝혔다. 정통 사극을 내세운 <연개소문>처럼 진지한 역사논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까닭이기도 하다. 임기환 교수(서울교대·고구려사)는 “<연개소문>은 역사적 기록이 있어 드라마가 어떻게 변형·왜곡했는지 검증할 수 있지만 주몽과 관련해선 기록 자체가 희소하고 그나마 설화”라며 “드라마 <주몽>을 판타지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구려가 고조선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설정 △당시 왕은 제사장이기도 했는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 점 △정치 권력이 교역권을 장악했던 시절에 전문 상단이 등장한 점 등에는 의문을 제기하며, “큰 줄거리에서는 그 시절에 대한 연구 성과를 반영했으면 한다”고 주문했다.
주인공이 비범한 조력자를 만나 역경을 헤치고 영웅이 된다는 큰 줄거리는 고전적이다. 줄거리뿐만 아니라 대사, 액션도 무협물의 기운이 어린다. 주몽의 아버지이자 스승인 해모수는 앞을 못봐도 수십 대 일로 싸우는 건 기본이다. 주몽의 혈을 틔워주고 기운을 모으게 돕는다. 싸움 장면에는 공을 들였다. 김근홍 피디는 “한 신(장면)을 7~8시간씩 찍으며 무예 느낌이 나도록 세밀하게 묘사하려 한다”고 말했다.
작가들은 이 상상의 세계에 현대에도 어울릴 법한 갈등을 풀어놓는다. 금와와 해모수가 강대국 한나라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는 반면 부득불은 부여의 숨통이 끊어질 걸 우려해 유화책을 지지한다. 강대국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고민은 고대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권력들이 거머쥐려 버둥거리는 소금과 철제무기 대신 원유와 핵무기를 대입해 볼 수도 있다.
<주몽>의 힘은 겹겹이 쌓인, 개연성 있는 갈등 관계에서 나온다. 악인도 그저 악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아버지를 주몽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대소와 영포 두 왕자의 욕망도 이해할 만하다. 이들과 주몽의 경쟁이 드라마의 주요 갈등선이라면 이 위에 신녀 여미을과 왕, 신하와 왕,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갈등이 얽혀 이야기를 탄탄하게 죈다. 최 작가는 “이제까지 조력자였던 금와왕과 주몽 사이 갈등이 앞으로 도드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지…=<주몽>은 새로운 사극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대장금> <서동요>처럼 주인공에게 문제를 주고 푸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속에서 주인공들은 조금씩 성장한다. 하지만 주몽의 캐릭터는 장금이나 서동보다 전근대적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그는 주체적이지 못하다. 장금이 무엇이든지 묻고 뒤집어 생각해보는 능력을 무기 삼아 한 단계씩 올라가는 반면 주몽은 상황이 그를 몰아갈 뿐이다.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의 능력이 아니라 그의 핏줄, 아버지다. 그를 밀고 나갈 추동력도 아버지의 대업을 이루라는 명분이다. 대소, 영포 두 왕자도 아버지 금와를 향한 인정투쟁을 벌인다.
해모수의 연인인 유화부인이나 주몽과 약간의 로맨스를 펼친 부영은 남성 영웅을 향한 여성 조력자의 구실에 충실하다. 현명하며 자애롭고 희생적이다. 이 속에서 소서노라는 특별한 캐릭터를 선보인 점은 눈에 띈다. <대장금> 등에서도 강한 여성은 보아왔지만 현실적인 욕망을 드러낸 여성 캐릭터가 소서노처럼 긍정적으로 그려진 경우는 드물었다. 소서노는 주몽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태자가 될지 모르는 대소 왕자도 놓치지 않았다. 최 작가는 “주몽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무기로도 쓰겠다는 게 소서노의 로맨스 철학”이라며 “앞으로 소서노와 대소, 주몽 사이 사랑 이야기도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