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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는 가라!
2001-02-15

<리버티 하이츠> (Liberty Heights)

1999년, 감독 배리 레빈슨 출연 애드리안 브로디 장르 드라마 DVD 동시출시 (워너)

1954년 미국 볼티모어. 막 보급되기 시작한 TV 수상기로 극장들엔 위기감이 감돌고 있었고, 전후 풍족한 미국의 영광을 누리는 10대들 사이에선 자동차 문화(teen age car culture)와 ‘록 앤 롤’ 등으로 대변되는 ‘팝 컬처’가 싹트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학교에서는 인종분리정책이 폐지되긴 하였으나, 여전히 인종적, 계급적 분리와 편견은 극에 달해 있었다. 배리 래빈슨 감독의 99년작 <리버티 하이츠>는 바로 그러한 시기를 배경으로, 문화적 이질성과 막 분출되기 시작하는 10대 소년들의 성적, 사회적 욕망들을 잔잔하고도 낭만적인 노스탤지어의 방식으로 회상하고 있다.

볼티모어에 위치한 리버티 하이츠라는 유대인 거주지역. 평범한 유대계 가족의 아버지는 매출이 형편없는 삼류 스트립쇼 극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두 아들 밴(Van)과 벤(Ben)은 모범생처럼 얌전하면서도 어딘지 범상치 않은 개성의 소유자들. 급기야 어느 날, 둘째아들 벤은 같은 반 흑인 여학생에게 반하게 되고, 큰형은 할로윈 파티에서 만난 WASP 상류층 여인에게 매료돼버린다. 어머니는 아들이 흑인 여학생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말에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며 흥분하고, 형은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상류층 여인에게서 결국 농락당하고 만다.

실제로 50년대 볼티모어에서 10대를 보낸 감독 배리 래빈슨은 마치 자전적인 일화를 녹여낸 듯한 이 작품에서 정체성의 갈등을 겪는 10대 소년의 눈에 비친 복잡 미묘한 세상을 담아내고 있다. 특유의 유머러스하고 재치있는 드라마트루기로 구성된 이 작품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건 “유대인, 개 그리고 유색인종 출입금지”라는 표지판이 달린 야외 수영장 장면. 영화의 초반부, 왜 자신들이 개보다 먼저 출입금지 서열 1위에 놓였는지를 가지고 논박하던 주인공 밴과 그 친구들은 이 영화가 끝날 무렵 과감히 그 금기에 도전하는 행위들을 감행한다.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압축하는 이 장면은 그것이 단지, 보이지 않는 감정적 편견들이 아니라, 주거지와 문화적 이질성으로 구획되어 있는 사회적 재생산 구조임을 은유한다. 이 영화 속에서 자신들의 커다란 코만큼이나 인종적인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유대인들과 흑인 그리고 WASP들간의 골깊은 대립과 모순들이 사건인 것이고 배경인 셈이다. 그렇다고 감독이 심각한 사회학을 논하는 것은 아니니, 영화는 충분히 재미있고 유쾌하다. <뉴욕 타임스>의 스티브 홀든은 이 영화가 유사한 여느 할리우드 영화들보다 50년대의 사회, 문화적 감성을 가장 잘 표현했다고 썼다. 그것은 시종 흘러나오는 사운드 트랙들 속에서 더욱 부각되는데, 이 작품의 DVD판에는 따로 음악 사운드트랙이 수록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시길!

정지연/ 영화평론가woodyalle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