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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한국영화 상반기 결산 [1] - 투자·제작·배급 부문
김수경 사진 씨네21 사진팀 2006-07-24

충무로에는 “올해 데뷔 못하는 감독이나 노는 스탭은 바보”라는 말이 농담처럼 나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를 시작한 1992년부터 개봉작 기준 한국영화가 연간 100편을 넘긴 경우는 없었다. 2006년 상반기 개봉작만 47편. 연초 대두된 ‘100편 제작’의 소문은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자금 유입은 풍부하고 제작 열기도 가득하니 한국영화는 승승장구 중일까. 속사정은 좀 다르다. 입도선매로 제작비를 더해주던 일본시장은 싸늘히 식어버렸고, 배급시장은 과잉 경쟁의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편당 수익률은 갈수록 나빠지고 부가판권 시장은 회생의 기미가 없다. 도약과 퇴락의 갈림길, ‘연간 100편 제작시대’에 들어선 한국영화를 살펴본다.

제작편수 급상승에도 관객동원, 배급, 수익성 등 전반적 불안

우려는 현실이 됐다. 6월30일까지 개봉한 한국영화는 모두 47편. 월드컵 특수 때문에 6월 개봉작이 적었던 상황에도 상반기에 개봉한 한국영화는 50편에 육박했다. 늘 하반기 개봉작이 상반기보다 많았던 전례를 감안하면 제작편수의 증가는 피부로 느껴진다. 충무로에서 풍문으로 돌던 “연간 100편의 한국영화 제작”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연간 100편 이상의 영화가 제작된다는 사실은 매주 한국영화가 두편 이상 극장에 개봉한다는 뜻이다. CGV 영화산업분석자료에 따르면 상반기 관객은 8천만명을 넘기며 전년 대비 28.7% 성장을 기록했고, 한국영화 시장점유율도 59.5%로 준수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그것은 단지 “시장 상황을 외형적으로만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집계한 1월부터 5월까지의 한국영화 시장에 대한 통계에 따르면, 이월작인 <왕의 남자>를 제외한 개봉작 기준 한국영화의 관객동원은 전년 대비 오히려 1.5% 감소한 것으로 평가됐다. 반면 외국영화는 13.6% 상승했다. 2004년부터 3년간 추세를 살펴보면, 한국영화는 개봉편수는 증가했지만 편당 관객동원율은 감소 중이며 외국영화는 두 측면 모두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영화 시장의 상반기 흥행성적을 보면 1월 흥행을 주도했던 <왕의 남자> <투사부일체>가 불러들인 관객이 1800만명을 넘었다. 2월부터 한국영화는 성적이 저조해졌고 “몇달간 그런 부진이 계속되다 5, 6월로 넘어오며 할리우드영화가 압승한 요소가 한국 영화계로 하여금 상대적인 빈곤감을 느끼도록 했다”고 쇼박스 정태성 상무는 말했다.

제작 편수 증가, 2007년 경 배급 과부하 예상

한국영화 제작편수의 급격한 증가는 “올초 이루어진 제작사들의 우회상장 러시, 이동통신사의 지속적인 신규자금 유입, 메이저들의 라인업 확대라는 세 요소에서 비롯됐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정태성 상무는 “쇼박스에서 투자·배급이 이루어진 작품만 30편, 제작 및 촬영에 돌입한 영화만 열다섯편 이상”이라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철수한 CJ엔터테인먼트와 달리 쇼박스의 모기업 미디어플렉스는 7월7일 상장하자마자 코스닥시장 시가총액 50위권 내로 진입하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통상 CJ엔터테인먼트가 쇼박스보다 많은 작품에 투자했던 점을 감안하면 메이저 투자·배급사의 투자 규모 확대는 명백하다. MK픽처스 이은 대표는 “관객 증가에 비해 작품 공급이 급격히 늘어났고 그것은 전반적으로 제작할 자금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를 표현하는 창작자들 입장에서는 도전하고 시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자금은 넘쳐나고 제작자들은 의욕에 차 있다. 하지만 정작 관건은 ‘제작’이 아니라 ‘상영’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처음 경험하진 않는다. 2001년 투자조합의 결성에 의해 2002년 개봉편수가 80편대로 급격히 증가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올해 100편이 만들어져도 개봉편수는 80편 중반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시네마서비스 김인수 대표는 말했다. 김인수 대표는 “배급과 유통에서 다양하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자금 유입이라는 외부요인에 의한 제작 활성화는 결국 산업적 거품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왕의 남자>

<괴물>

제작편수의 급증은 일단 배급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킬 조짐이다. 특히 극장 부문에 70∼80%의 매출이 집중된 한국영화 산업의 현재 구조를 감안하면 상영을 위한 개별 작품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최건용 이사는 “현재 한국영화 시장은 배급과 흥행의 쏠림 현상이 지나치게 심하다. 다양한 배급구조가 모색되지 않는다면 작품별로 관객이 쏠리는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스튜디오2.0 김승범 대표는 “막상 투자는 했지만 배급 부분에서 고민에 빠져 있는 프로젝트들이 있다. 그런 영화들은 메이저 배급사로 가면 우선순위에서 고려되기 어렵다. 바꿔 말해 양대 메이저로 몰리던 배급 구조가 중견배급사로 분산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자금 확충과 프로젝트 개발이 주로 2005년 말부터 2006년 초에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배급의 과부하는 2007년 초부터 나타날 공산이 크다. 이은 대표는 “산업적으로 호황 국면에서는 공급과잉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공급과잉으로 수익이 악화되면 반대로 위축되는 것처럼. 아마도 현재의 제작 열기는 내년 말까지는 지속될 것 같다. 물론 산업적인 양극화 현상도 동반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수 대표는 “내년쯤에는 밀려서 개봉을 못하는 영화들이나 이월돼서 늦게 개봉하는 영화들이 생겨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 스크린 수는 2005년 기준 1648개로 집계됐다. 충무로에서는 스크린 수의 증가는 2007년이면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인수 대표는 “이러한 관객, 스크린 수의 증가는 최종적으로 2007년이면 둔화될 것으로 판단한다. 내년에는 그런 조짐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크린 수의 고착은 한국영화 시장 사이즈의 문제와 직결된다. LJ필름 이승재 대표는 “이때가 국내의 한국영화 시장 사이즈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점이며, 그것은 국내시장의 매출 증가로 더이상은 수익의 활성화를 꾀할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줄리아>, 강제규의 <X프로젝트>를 비롯한 굵직한 해외 프로젝트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우회상장으로 자금을 끌어들인 제작사들의 반기실적이 산출되는 2007년은 한국 영화산업의 중대한 갈림길이 될 분위기다.

질적 증가 미비로 수익성 악화 대두될 것

평균제작비는 여전하고, 편수만 급증하는 상황에서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점은 수익성 악화다. 최근 2년간 순제작비 28억원, 마케팅비 14억원으로 추산된 편당 평균제작비는 내려갈 조짐이 보이질 않는다. 김승범 대표는 “제작편수가 늘어나면서 수요 공급의 원칙에 따라 오히려 제작비 상승이 우려된다. 올라가긴 쉽지만 웬만해서는 내려가지 않는 국내 영화제작비의 속성을 감안하면 이는 프로덕션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최건용 이사는 “특정 작품에 대한 쏠림 현상이 심해질수록 다수가 손익분기점에 미달되는 상황이 빚어진다. 산업적으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200만∼300만명을 동원하는 중간층 흥행작이 두텁게 형성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적정한 편수가 제작되었을 때 “평균 50만명을 동원할 영화가 10만∼20만명이 관람하는 선에서 끝나는 상황”이 반복된다. 정태성 상무는 “한국영화의 시장 사이즈나 편당 제작 원가를 고려하면 이 시장에 적정한 편수가 산출 가능하다. 현재는 그것을 훨씬 넘어선 상태”라고 말했다. 이승재 대표는 “상반기만 해도 흥행상위 7편을 제외한 40편은 겨우 손해를 면했거나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했다. 작품이 늘어날수록 이러한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 상황은 영화산업의 내적 인프라가 확충되며 일어난 질적 증가가 아니다. 때문에 수익성 악화와 출혈 경쟁이 불가피하며 그것은 편당 관객동원 수 감소로 드러날 것”이라고 이대표는 말했다. 한국영화 해외판권의 젖줄로 여겨지던 일본시장이 급속도로 냉각된 현 시점에서 제작편수 증가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한국 영화산업에 자승자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과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시장은 쉬이 늘어나지 않는다. 기대작 <한반도>와 <괴물>이 개봉하는 7월을 기점으로 스크린 확보를 위한 배급사간의 경쟁은 절정에 달할 것이다. 정태성 대표의 “작품성으로 승부할 수 있는 영화들이 꽤 있기 때문에 상반기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전망과 이은 대표의 “투입된 제작비와 일정한 관객 숫자를 감안하면 전체 수익의 악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 중 한국영화의 하반기 실적이 어느 곳을 향할 지 궁금하다. 제작이 만개한 한국영화는 지금 도약과 퇴조의 기로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