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가 끝나고 돌아왔더니 책상 위에 두고간 새 책이 없어졌다. 같은 자리에 두었던 역사책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귀여운 표지의 소설책만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귀여운 표지의 그 책은 페이퍼백이어서 닳아질까봐 일부러 휴가길에 들고가지 않았었다. 한달 만에 출근하다보니 일하기 싫다는 한탄만 가득하던 마음에 세상을 향한 원망마저 스미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귀여운 표지에 혹할 만한 인물과 이탈로 칼비노를 좋아할 만한 인물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용의자 리스트를 작성하여 미지의 범인에게 언젠가 같은 방식으로 복수하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같은 식으로 잃어버렸던 몇권의 책의 대가마저 치르게 하겠다고. 그러나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야 말이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수십명의 취향이 어떤지 내가 알 리가 없다.
예전엔 이렇게 화를 내지 않았었다.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갈 리가 없는 물건, 예를 들면 머리빗 같은 걸, 곧잘 집안에서 잃어버리곤 했던 나는 언제나 궁금했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그 물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 집이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닌데. 더욱 이상한 사실은 찾던 물건이 어딘가에 놓여 있기에 좋아하다가, 다음에 그 물건이 필요해 기억해둔 장소를 뒤지면, 다시 없어지곤 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내 나이 스무살이 넘어 <바로워즈>라는 영화가 나오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음을 얻었다. 없어진 공책과 머리핀과 목걸이 따위는 모두 마루 밑에 사는 작은 요정 ‘바로워즈’들이 빌려갔던 거로구나. 나는 물건을 빌려가고서 돌려주지 않는 바로워즈가 우리 집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마루 따위는 있지도 않았던 기숙사와 자취방에서도 분명 바로워즈가 살 만한 자리를 찾아내어 동거하고 있었으리라 굳게 믿게 되었다. 진짜였다. 무언가 초현실적인 힘이 작동하지 않고서는 그토록 자주 물건을 잃어버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내 책꽂이에도 군데군데 돌려주지 않은 남의 책이 꽂혀 있었지만. 자신의 허물은 생각하지 못하는 나는 그저 바로워즈라는 존재를 알게 되어 기뻤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는 작은 일에도 이토록 화를 내게 되었을까. 침대와 나란한 방향으로 놓여 있는 책꽂이를 물끄러미 바라볼 때마다 사무실에서 없어진 <마법사의 조카>의 빈자리가 눈에 밟힌다. 빈자리가 남아나도록 책꽂이가 큰 것도 아니지만 <나니아 연대기> 일곱권 중에서 여섯권만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의 마음은 자꾸 저기가 바로 빈자리라고 주장한다. 두달에 한번 정도도 책상을 치우지 않아 금세 무너질 것처럼 쓰레기를 쌓아놓고 살면서도 누군가 내 자리에 자기 물건 하나만 올려도 금세 신경질을 내곤 한다. 지금 나는 내 눈에 거치적거리는 모든 것에 화를 내고, 원망을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요정을 믿으면서 살기로 결정했다. 요정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장소에 존재하고 있을 모든 것들을 다시 믿으면서 살고 싶어졌다. 나쁜 일이 있어도 좋은 일이 있어도 모두 그저 신기한 일처럼 느껴지도록. 이런 일이 마음을 먹거나 노력한다고 하여 가능한 것일까? 나는 팅커벨을 살린 아이들이 그 순간 모두 마음을 먹고 노력을 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