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 지가 꽤 되었지만, 인터넷 서점의 할인율이 높아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도쿄기담집>을 이제야 읽었다.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양장이 싫다. 두꺼운 책의 양장에는 동의하지만 기껏해야 200, 300쪽의 얇은 책에 하드커버를 씌우는 것은 정말 싫다. 가지고 다니다가 흉기로 쓰기 좋을지도 모르겠지만, 쓸데없이 책값만 비싸지고 책장에 꽂아두면 들쭉날쭉한 것도 싫다. 책 크기도 가급적 일정하게 몇 가지로 단순화된 것이 좋다. 책 전체가 하나의 컨셉으로 디자인되어 있다면 모양이나 크기가 좀 색달라도 인정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역시 나는 단순한 게 좋다. 슬렁슬렁 예쁘게 편집된 책보다는, 작더라도 글자가 꽉 차 있는 책이 좋다. 누가 뭐래도, 나는 책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양장으로 멋부린 책은 사기가 싫다. 사더라도 한참 기회를 엿보다가 할인을 할 때 산다. 할인을 안 하면, 다른 책을 산다. 그게 다양성의 좋은 점이다.
어쨌거나 <도쿄기담집>을 읽었다. 여전히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신간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건 아니다. 오히려 느긋해졌다. 어떤 책이 나오건, 이제는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도쿄기담집>도 그랬다. 그냥 오랜 친구를 만나, 하릴없이 옛날이야기나 하고, 크게 중요하지 않은 잡담을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다. 너무 익숙해지면, 큰 기대도 없어진다. 그게 나쁜 건가? 오히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커지는 법 아닌가? 42.195km를 뛰려면 한결같아야 한다. 그 한결같음이 나는 마음에 든다. 나도 그 거리를 뛸 생각은 없지만, 그 한결같음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은 즐겁다.
기이한 동시성, 귀신, 움직이는 돌, 이름을 훔쳐가는 원숭이 등 ‘기담’에 관한 단편들이 엮인 <도쿄기담집>에서 마음에 든 구절은 이런 것들이다.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자격 같은 것이 있든 없든, 있는 그대로.’ ‘그녀는 이제부터 다시금 그 이름과 함께 생활해나가게 될 것이다. 모든 일은 잘 풀려나갈지도 모르고,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이름이고, 그 밖에 다른 이름은 없는 것이다.’ 기담을 엮어가면서 하루키는 이 세계의 초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건 인간의 초월성이 아니라, 세계의 초월성이다. 세계는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위해서 존재한다. 아니 아마 그런 의식조차 없지 않을까. 물이나 바람이나 어떤 의지를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은 인간과 같은 자의식이 아닐 것이다. 단지 자신을 지키려는,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는 속성 같은 것이 아닐까.
이 세계에 기담이 존재하는 것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게 이상하다거나, 불합리하다고 느낀다면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하다.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그냥 그 흐름을 따라가면 알게 된다. 그러면 느끼게 된다. 머리 이전에 몸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 역시 세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