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테 정말 실망했다. 한국 음식이 먹고 싶다니, 정말로 실망했다. 이 땅을 떠나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마다, 하나는 자신이 있었다. 외로움은 두려워도 음식고생은 두렵지 않았다. 일찍이 1970년대 초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계란으로 젓가락질을 배우고, 소시지로 도시락을 채우고, 햄버거로 주린 배를 채워왔다. 패스트푸드 ‘헤비 유저’(Heavey User)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김치 맛은 구분 못해도 햄버거 맛은 눈감고도 구분할 수 있다고 자부해왔다. 이것은 한국에서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커밍아웃인데, 심지어 나는 김치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김치의 신맛을 싫어하고, 김치를 즐겨 먹지 않는다(한국에서는 비록 <애국가>는 싫어할지언정 김치는 좋아한다고 말해야 ‘한국 사람’으로 인정받고, 과오가 용서된다). 그랬던 내가 월드컵 취재차 독일에 머문 지 며칠 만에 한국 음식이 간절히 그리웠다. 첫날부터 짬뽕이 생각나더니, 나중에는 길고 동그란 빨간색 물건만 봐도 떡볶이로 의심하는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창아~”를 외치는 광고 속의 차승원처럼 매운맛을 그리워하면서 25일을 보냈다.
나한테 또 한번 실망했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기다리면서 나한테 실망했다. ‘빨리빨리’ 문화는 노동강도를 높이려는 놈들의 음모라고 경계해왔다. 그런데 그런 신념마저 흔들렸다. 한국이라면, 주문한 음식을 받아서 먹고 있을 시간에 아직 주문도 하지 못한 상황에, 정말로 속이 터졌다. 마음 한쪽에서는 느려터진 그들을 원망하고, 마음 다른 쪽에서는 이것도 못 참느냐고 스스로를 타박하고, 마음이 찢어졌다.
‘그래, 너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야’,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일 수밖에 없는 순간이 또 있었다. 애초부터 나의 슬로건은 “한국이 선전하지만 16강에 탈락한다”였다. 한국이 16강 올라가면, 체류도 길어지고 기사도 더 써야 하니 적당히 했으면 싶었다. 막상 월드컵이 시작되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커졌다. 유니폼 색깔만 다를 뿐 행태는 비슷비슷한 응원단을 따라다니는 일이 지겨웠다. 독일 5개 도시를 순방했지만, 친구 말처럼 “광주나 대구나”였다. 한국이 토고를 이기고, 프랑스와 비겨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지는 않았다. 알시다시피, 한국은 정말로 아깝게 탈락했다. 스위스전이 끝나자 당황스러운 ‘시추에이션’이 연출됐다. 한국인 할머니가 “이게 뭐야”라며 눈물을 흘렸다. 할머니는 33년 전 독일에 간호사로 왔다고 했다. 가난을 피해온 이주노동이었다. 그런 할머니에게 한국팀의 선전은 30년 한을 풀어주는 한판 굿이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인과 결혼해서 낳은 파란 눈의 딸, 금발의 며느리까지 데리고 500km를 달려왔다는 할머니의 하소연을 들으면서 정말로 몸둘 바를 몰랐다. 이렇게 월드컵을 통해 한국인으로 자부심을 갖게 된 재외 한국인들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독일로 적지 않게 날아왔다. 하노버가 붉은 악마의 눈물에 젖었던 다음날, 짐을 싸서 하노버역으로 나왔다. ‘스위스 나치’(그들의 응원구호가 “스위스 나치”여서 붙여진 별명이다)들이 기세등등하게 깃발을 휘날리며 다니는 사이로, 축 처진 어깨에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한국인들이 보였다.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간절히 이기기를 바랐다면 마음이 덜 무거웠을 것 같다는 후회가 들었다. 이렇게 한 많은 민족의 애국심은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어서, 생각 많은 자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여전히 나는 한반도의 애국주의는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나의 독일 견문록에는 몇 가지 교훈이 남았다. 교훈 하나, 유럽에서 축구는 마음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기대는 마지막 안식처구나. 둘째, 어디를 가도 노란 얼굴에 꽂히는 백인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정말로 여기서는 어떤 불친절과 불이익을 당해도 일단 인종차별을 의심할 수밖에 없겠구나. 셋째, “도이칠란트!”를 외치는 독일인들에게 유난히 거부감을 느끼면서 역시나 나치의 잔상은 무서워. 넷째, 굽거나 튀긴 고기에 튀기거나 으깬 감자를 곁들이는 요리 이외에는 다른 종류의 음식을 찾기 힘든 독일 거리에서 ‘생각보다 못 먹고 사는구나’. 그리고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터키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꼬마들을 보면서, 독일에 사는 터키인이 공식 통계로만 300만명이라는데 터키에도 본선 자동진출권을 줬어야 해. 이상이 나의 독일 축구 인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