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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 픽션 지나쳐 국수주의 우려…정통사극 맞나?
남은주 2006-07-13

드라마 <연개소문>은 645년 안시성 전투에서 고구려의 조의군 활약이 컸다고 묘사하고 있다. 안시성 전투 직후 조의군을 필두로 한 고구려군이 토산을 점령한 장면.

‘동북공정 대응 의도’ 무리한 전개 논란 작가 “한시성 전투 직접 지휘, 치우천왕·단군에 제사·조의군의 전투 참가” 학계 “있을 수 없는 가설, 주몽·유화부인 숭배, 무술집단 아닌 관등”

8일 첫방송한 에스비에스 주말사극 <연개소문>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란에 휩싸였다.

<연개소문> 1,2회에서 80여분 다뤄진 안시성 전투 장면을 보고 사학자들은 △연개소문이 안시성 전투를 이끈다는 설정 △연개소문이 치우천왕과 단군에게 제사하는 장면 △조의군을 이끌고 참전하는 장면들을 지적하며 “시대에 맞지 않는 묘사로 시청자들을 오도했다”고 비판했다.

고구려연구재단 윤휘탁 연구원은 “치우천왕, 배달국, 환인 등은 후대의 기록에나 나오는데 고구려 시대의 인물인 연개소문이 이를 알았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또다른 고구려재단 연구원도 “‘요동성 전투에서 당군에게 몰리자 성주가 기원을 드렸다’는 한 기록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고구려인들은 단군이 아니라 시조인 주몽과 유화부인을 숭배했다”고 했다. 고대 고구려인들의 신앙을 무시하고 민담속 전쟁의 신인 치우천왕을 애써 우리 민족의 뿌리와 연결하는 태도는 역사라기보다는 종교에 가깝다는 것이다.

또 1회 방송에서는 안시성 마지막 전투를 앞두고 연개소문이 조의군을 이끌고 출전하는 장면이 있었다.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 이환경 작가는 “연개소문은 신라 화랑과 비슷한 조의였으며, 조의군은 정신적으로 무장된 특출한 무술집단”이라고 밝힌 일이 있다. 그러나 고구려 연구자들은 “상가·대로·사자 등과 함께 관등 중의 하나였던 조의를 신라의 화랑같은 군대로 표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조합한 결과”라고 말했다. <연개소문> 역사자문위원단 중 하나인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 소장도 조의군이 참전했다는 뚜렷한 근거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김소장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제가화상,조의)이 고구려 때는 적을 막는데 선봉에 섰다’는 구절이 있어 무리한 추론은 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가장 논란이 된 연개소문의 안시성 참전여부에 대해서 학자들은 대체로 “역사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사실”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한다. 김용만 소장도 “연개소문이 당시 성 안에 있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우려를 나타냈지만 “작가가 평소 극 중 이야기 전개를 최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을 말해왔고 초반에는 아쉽더라도 점차 정통 역사드라마로서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드라마는 이외에도 당태종과 연개소문의 대결, 설인귀와의 결전 등 여러 대목에서 이야기를 재가공, 편집하는 과정을 거친 듯하다.

<주몽>과는 달리 <연개소문>이 정통역사극을 표방했다는 점도 드라마에서 ‘픽션’을 민감하게 보게 되는 이유다. 더구나 작가 이환경씨는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창작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레이션으로 밝히겠다”고 했음에도 실제 방영에서는 거의 나레이션이 없었던 것도 논란을 부추겼다. 허웅 책임프로듀서는 예기치 못한 역사논란을 두고 “한민족의 기개와 자신감을 찾자는 기획의도에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연개소문 역을 맡은 배우 유동근

이환경 작가는 드라마 기획단계부터 이미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기획한 작품임을 공공연하게 밝히면서 연개소문을 민족의 영웅으로 되살리고 싶다는 의도를 강하게 드러냈다. 지난 6월28일 열린 제작발표회에서도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이 드라마 한편으로 무색하게 될것”이라며 “중국은 긴장해야 한다"고 호언했다. “역사적 사실만으로 드라마를 만들 수 없으며, 허구가 가미될 것”이라고도 밝혔지만 작가의 상상력과 역사관의 개입이 지나쳐 ‘픽션’과잉으로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색채가 덧칠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중국이 고대 동북변방의 역사연구에 관한 대규모 국책사업인 동북공정으로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려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무리하게 ‘픽션’을 버무려 넣은 드라마로 민족적 자긍심을 부추긴다면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동북공정 공방의 연장선 상에서 중국에 진출한 한류 드라마 등으로 ‘역풍’이 불어 불똥이 튈 가능성도 있다.

중국고대사를 전공한 한 사학자는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하는 움직임은 사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는 좋지 않다”며 드라마의 파급력을 경계했다. 고구려사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사학자들도 “지나치게 연개소문을 영웅으로 만들고, 고구려의 역사를 영광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역사를 오역하는 무리한 접근은 동북공정에 맞서는 데에 되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윤휘탁 연구원은 “자성없는 일방적 역사관은 동북공정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역사 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자가 합리적으로 객관적 역사 사료를 함께 검증하는 것이 올바른 역사적 태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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