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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로 변주된 전쟁 이야기, <알포인트>

MBC 7월15일(토) 밤 12시55분

“당신이 있는 그 자리에 내가 있다. 손에 피를 묻힌 자는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군인들이 죽어간 호수를 메운 자리 위에 이와 같은 글귀를 담은 비석이 서 있다. “손에 피를 묻힌 자”들은 정녕 돌아가지 못했다. 알포인트. 베트남 전쟁 이전, 중국인들에 의해 베트남인들이 살해된 곳, 게릴라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 군인들이 흔적없이 사라진 곳, 그리고 1972년 한국 맹호부대 소속의 군인 9명이 실종된 곳. 시체들은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구조를 요청하는 유령의 목소리만 들린다. 군사용어로 ‘알포인트’는 실종자들을 비밀리에 구조하는 로미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역을 뜻한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용병으로 베트남에 파견된 한국군의 비극적 말로를 그리고 있다. 혼바우 전투의 유일한 생존자인 최태인(감우성) 중위에게 6개월 전 알포인트에서 실종된 18명의 군인들을 찾으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9명의 병사들이 알포인트의 낡은 주택으로 진입한다. 실종된 병사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통신에서는 이들의 죽음을 경고하는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기존의 전쟁물들은 외부의 가시적인 적을 상정하거나, 본국으로 돌아온 병사들의 죄의식을 다루곤 했다. 이 영화가 그런 영화들보다 훌륭한 점은 바로 여기 있다. <알포인트>에서 병사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싸운다. 그것은 자신이 살해한 누군가의 유령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설령 그들 앞에 출몰한 유령이 그들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그 저택에 들어온 이상 다시 말해, 전쟁에 발을 들인 이상 그들은 전쟁의 공모자, 즉 가해자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피를 묻힌 자”에게는 죄의식도 사치다. <알포인트>는 ‘사실적’이고 스펙터클한 전쟁장면들을 배제하고 피와 유령으로 시간이 정지된 공간과 육체가 없는 음향을 통해 공포를 유도한다. 결국 전쟁이란 공포라는 장르로밖에, 끊임없이 귀환하는 원혼들로밖에 드러날 수 없는 것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쟁영화에 완결된 결말은 불가능하다.

이라크에서 소녀 아비르 카심 함자가 미군에 성폭행당한 뒤 살해되었다. 그녀의 가족들도 살해되었다. 범인은 미국으로 귀국했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소녀의 장례식은 치러지지 못했다. 핏자국은 사라지고 더 많은 유령들이 귀환하고 있다. 우리는 피를 묻힌 자가 무사히 살아남은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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