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우릴 돕나봅니다.” 73일로 축소된 스크린쿼터 시행 첫날. 잔뜩 찌푸린 주말 하늘을 보고 우천시에도 거리행진을 강행할 거냐고 물었더니, 스크린쿼터문화연대 관계자가 “비는 안 올 것”이라며 확신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하늘이 돌봐주니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하는 한-미 FTA 협상 테이블 또한 두 동강 날 것이란다. 7월1일 오후 5시. 3천명 정도의 인파가 이미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 집결해 도로 하나를 점하고 있다. 대열은 계속 늘어나고, 함성은 더욱 커진다. “한-미 FTA 1차 협상문을 즉각 공개하라!”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단상에 차례로 오른다. 스크린쿼터 축소를 전제로 정부가 추진해온 통상협정이 국익에 반하는 매국 행위라고 비난을 퍼붓는다. 도대체 “무엇이 켕기기에 협상문 공개조차 거부하고 있느냐”며 정부를 신랄하게 질타한다. 몸이 끈적끈적한 날인데도, 영화인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다. 안성기도, 최민식도, 전도연도, 설경구도, 송강호도, 김혜수도, 그 누구도 꿈쩍 않는다. 외치고 또 외칠 뿐이다. 7월1일은 ‘국치일’인 동시에 또 다른 ‘투쟁선포일’이라고 말이다. 7월10일부터 14일까지 나흘 동안 예정된 ‘한-미 FTA 2차 협상 저지를 위한 범국민운동주간’을 앞두고, 열린 공동결의대회.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공동결의대회가 열린 대학로에서 시작해 종로로, 종로에서 다시 광화문으로 퍼져나갔다. 그 목소리를 놓칠세라 <씨네21>도 바삐 쫓았다. 7월3일 광화문 교보빌딩 앞에서 있었던 임권택 감독의 마지막 1인 시위까지.
#1 영화인들, 대학로에 집결하다
1. “우리는 하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에서 열린 공동결의대회에 모인 영화인들이 한뜻으로 한-미 FTA 저지와 스크린쿼터 원상회복을 외치고 있다.
2. 김형준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회장이 배종옥과 강혜정에게 손수건을 전달하고 있다. 제협은 이날 한-미 FTA 반대 구호가 새겨진 손수건을 직접 만들어 나와 목과 팔에 둘렀다. 색깔이 왜 국방색이냐는 질문에 싸이더스FNH 차승재 대표는 “우리가 원래 좀 강성이거든”이라고 설명.
3. ‘우리의 요구? 간단하다. 한-미 FTA 협상 그만 하라는 것. 그리고 스크린쿼터 원상회복하라는 것. 그래도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박찬욱 감독이 귀 막은 정부를 향해 영화인들의 자명한 요구안을 들어 보이고 있다.
4~10. 송강호, 설경구, 전도연, 황정민, 김혜수, 하지원, 엄정화 등의 배우들이 단상 위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 구호를 외치며, 거리 행진에 나서다
1.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영화에는 국경이 있다.” 문소리, 전도연 등이 스크린쿼터를 축소 시행한 정부를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종로거리를 걷고 있다. ‘쌀과 영화’ 거리행진 때는 김광수 청년필름 대표가 거리행진 나팔수를 자청했는데, 이번엔 목청 좋고 뱃심 좋은 변영주 감독이 더위에 지친 영화인들을 독려했다.
2.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영화를 볼 자격이 없습니다.” 권영길,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을 비롯해 김세균 교수학술공대위대표, 정용건 금융공대위대표, 문경식 전국농민총연맹대표 등이 앞장서서 걷고 있다.
3. 대학로에서 공동결의대회를 마치고 종로에서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가장 큰 피해는 우리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은 걱정에 아버지는 주말에 고사리손을 이끌고 유원지 대신 집회장을 찾았을 것이다.
4. “집회신고를 여기까지만 내셨잖아요.” “아니, 영화인들이 얌전하게 시위하니까 우습게 보는 거예요?” 경찰간부와 한-미 FTA 저지 범국본 관계자가 말싸움을 벌이는 동안, 영화인들과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보신각 앞에서 구호를 외쳤다. 결국 우회해서 광화문에 진입하기로 합의.
5. “기자들 제발 말 좀 들으세요.” 대학로에서 광화문까지 계속될 거리행진 시작을 앞두고 배우들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포토라인은 엉망이 됐다. 매번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집회 때마다 배우들을 앞세운 무질서한 시위였다고 써대는 매체들, 배우들 보겠다고 카메라 들이미는 데 정신없는 당신들은 진정 책임이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