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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개구리의 비애
박혜명 2006-07-14

3년3개월 전, <씨네21>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지진아에 꼴통이었다. 나는 영화에 무지하고 글도 못 쓰고 눈치는 없고 사람 말귀는 못 알아들었다. 이중 제일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지 않았다. 언제나 네 가지가 상호작용해서 복합적인 문제를 일으켰다. 일단 영화에 무지하니 영화기자로서 취향도 없고 쓸 수 있는 기사는 한정됐다. 그나마 내가 쓸 만한 아이템일 거라고 생각해서 선배들이 던져준 것도 나는 잘 쓰지 못했다. 눈치가 없어서 선배들이 쓴 기사를 보고 대충 흉내낼 요령조차 발휘하지 못한 까닭이다. 절망한 선배들이 ‘가장 쉬운 일’일 거라고 생각해서 내게 인터뷰 정리를 맡기면,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나는 선배를 따라 나갔다가 이상한 내용을 받아 적어오곤 했다. 입사시험을 치를 때 나는 S모 배우에 관한 배우론을 8절 시험지 한장 앞뒤에 다 채우고나서도 “종이 한장만 더 주세요” 하며 남들이 한면을 정성껏 채울 때 세면을 가득 채우는 경악할 만한 글쓰기 스피드를 보였지만, 나의 능력은 그때 그것이 전부였다.

능력있는 다른 두명의 후보를 제치고 입사한 나는 이곳에서 아주 오랫동안 내 몫을 못하고 지냈다. 내가 바보라는 건 남들이 말해주지 않아도 내 자신이 가장 잘 알았다. 오랫동안 절망하고 지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진아와 꼴통이라는 딱지를 뗐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도 했지만 여튼 언제부턴가, 내가 하는 일에 재미가 붙고 자발적인 의욕이 생겨 정말 열심히 덤볐다. 지진아로 롱런하던 나는 선배들에게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고, 지진아 한명을 뽑은 것에 대해 불안한 마음으로 <씨네21>을 떠났던 전 편집장 허문영 선배로부터 격려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완벽한 사람이 된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영화에 대해 무지하고 눈치가 없고 사람 말귀를 못 알아듣고, 글을 완전히 잘 써내지 못한다. 잘 썼다고 혼자 감탄하며 뿌듯해했던 기사들도 나중에 뒤져 읽어보면 민망함을 참을 수 없어 그 앞에서 혼자 중얼중얼 비웃음을 날리게 된다. 내가 지진아의 딱지를 뗐다는 건, 내가 쓴 프리뷰의 오류를 선배가 지적해주고 리라이팅시키다 못해 결국 자기가 다 뜯어고쳐서 내 이름만 달아놓는 일이 더이상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어떤 기사를 쓸 때 적어도 그 기사를 쓰는 의도를 완전히 이탈하는 일이 없다는 것 정도다.

최근 우리 회사가 내부적인 변화를 많이 겪으면서 내 아래로 후배들이 많아졌다. 정신없이 불어나 빠글거리는 후배들을 보며 선배들은 나보고 “이제 중견 기자네?” 하지만 그건 그들의 경력에 견주면 턱없는 소리다. 그런 턱없는 소리에, 내가 종종 우쭐해진다. 나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요즘의 나를 보면 영락없이 올챙이 적 시절 생각 못하는 개구리다. 나 잘났다고 내 입으로 떠들어서가 아니라, 남의 결점을 쉽게 말하고 남의 능력을 쉽게 비판하며 남의 행동에 쉽게 분노하고 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너무 정신없이 교만을 떨어서 집에 돌아오는 길이 허탈해질 때도 많다. 갈수록 속좁고 교만한 사람이 되어가는 내 자신이 정말 보기 싫다. 부끄럽다. 지진아 딱지 떼자마자 꼴불견 딱지를 붙인 나에게, 그래도 자존심이 있다는 게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