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없는 밴드. 2003년, 슈퍼그래스와 콜드플레이의 이력 첫머리를 만든 영국 최고의 인디레이블 ‘피어스 팬더’(Fierce Panda)에서 킨은 록밴드의 중추신경이나 다름없는 기타를 빼고 보컬과 피아노, 베이스로 멤버를 구성해 데뷔싱글 <Everybody’s Changing>을 내놓았다. 멜랑콜리하고 서정적인 사운드와 심장을 빨아들이는 멜로디, 트래비스의 보컬 프랜 힐리의 음색을 빼다박은 톰 채플린의 목소리. 킨의 음악은 콜드플레이와 트래비스, U2 등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에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지만 기타의 자리를 피아노가 대신했다는 사실 하나가 이들의 음악을 독창적인 것으로 인정받도록 했다. 전형적인 록기타의 리프와 팝발라드적인 터치를 오가는 팀 라이스-옥슬리의 피아노 연주는 노래마다 감성적인 영역을 더 깊고 자세히 파냈고, 기타 사운드의 여백이 아닌 피아노 사운드의 여백은 다양한 전자 사운드의 개입도 훨씬 자연스럽게 했다. 킨은 감성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의 전자 사운드를 이것저것 끌어들였다. ‘기타 대신 피아노’라는 점은 이들 음악에 사운드 면에서의 실험을 북돋웠다기보다 로맨틱한 감수성을 극대화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킨은 라디오헤드에서 콜드플레이와 트래비스로 이어지는 계보 아래 이름 하나 써넣을 만한 재목으로 인정받게 됐다.
킨이 기타없는 3인조 밴드가 돼야 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무명 시절 데모 작업 당시 기타리스트를 영입할 형편이 안 됐기 때문이다. 킨은 데뷔 앨범 <Hopes And Fears>(2004)의 전세계 500만장 판매고와 이어진 스페셜 에디션 발매 그리고 쉴틈없이 빡빡했던 공연 일정으로 6년의 무명 세월을 보상받았다. 이들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절대 소소한 컬트밴드로 남고 싶지 않다”고 속내를 밝힌 적이 있다. 메인스트림의 승자가 되고자 하는 킨의 2집 <Under The Iron Sea>는 음울하고 거칠다. 건조하고 강렬한 전자 사운드가 많아졌고 어떤 트랙에선 감성적인 멜로디 라인을 의도적으로 포기한 것이 느껴진다. 가사가 담아내는 감정의 폭도 1집 때보다 격한 구석이 많다. 이 점에서 킨의 행보는 콜드플레이를 연상시킨다. “U2를 모델로 삼았다”고 공공연히 밝히면서 1집의 인디적 성향을 버리고 방대한 사운드를 만들어낸 콜드플레이의 2집처럼, 킨의 2집은 1집의 아기자기함을 버리고 ‘피아노가 기타를 대체한 밴드’의 새로운 영역을 실험한 결과물로도 보인다. 소소한 컬트밴드가 아니라 메인스트림계의 슈퍼밴드가 되기 위해 스스로 큰 과제를 부여한 셈인데, 거기에는 안전장치로서 1집의 로맨틱한 감수성도 여전히 깔려 있다. <롤링스톤>은 킨의 2집에 대해 “예술인 척하는 뒤죽박죽의 앨범이 될 수도 있었지만, 대중의 로맨틱한 취향에 따라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팝적 성향을 더하고 있다”고 말해 킨의 음악성보다 대중성에 먼저 손을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