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계절이란 게 특별히 있을까. 겨울에 여름이 그리우면 지구 반대쪽으로 날아가면 되고, 봄은 맑아서, 가을은 청명해서 떠나기 좋다.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 그중 한 가지를 해결해주는 방학과 휴가철이 돌아왔다. 여행기가 꼭 필요한 준비물은 아니지만, 여행의 출발지이자 종착지는 결국 ‘나’라는 점에서 잘 쓴 여행서는 내 방식의 여행을 떠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양한 스타일로 자기 개성을 살린 여행서를 자의적 기준으로 모았다. ‘나도 저렇게…’란 여행의 소망으로 달뜨게 만들기도 하지만, 책상머리에서도 어쩐지 함께 여행을 하고 돌아온 듯한 기분좋은 착각도 가능하다. 여행서로 여행을 대신할 수 있다, 고 한번 속아보자. 좋은 여행서는 웬만한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이니까.
1. 감각의 유쾌한 환기: 여행쾌락주의자를 위한 구도서편
여행은 감각의 환기를 위해 시간과 돈을 들이는 특별한 수고다. <여행자의 로망 백서>(박사·이명석 지음/ 북하우스 펴냄)는 그 목표를 본능적으로 실천하자는 선동서다. <여행자의…>는 여행을 작정한 그때부터 터벅터벅 피로감에 휩싸여 돌아오는 최후의 순간까지 항복을 거부하는 로망의 선동으로 가득 차 있다. 무얼 빼고 넣을지 짐싸기가 고민스러울 때, 어떤 가이드북을 마련할지 헷갈릴 때, 멀고 먼 환승의 발품을 팔고 있거나, 기대했던 것보다 숙소가 초라할 때, 은근슬쩍 한숨이 배어나온다면 이 책이 필요한 순간이다. 혹시 이런 걸 상상해보았나? “현지의 향기를 가장 잘 만끽할 수 있는 방법은 현지인 속에 감쪽같이 숨어들어가는 것이다… 베트남에 갈 때는 완벽한 현지인 분장을 시도했다. 거의 코스플레를 하는 심정이었다. 잡지에 나온 베트남 사진들을 뒤져보고, 기온과 날씨 등 온갖 자료를 탐독한 끝에 가져갈 옷들을 엄선했다.” 날씬하고 탄탄한 그들의 몸매 때문에 절반을 실패하더라도 시도 자체가 추억이다. 또, 이런 용기와 수고를 발휘해보았나? 그리스의 테살로니케에서 열리고 있는 무역 엑스포에 기자를 살짝 사칭해 각종 기념품들을 잔뜩 챙겨와 친구들에게 나눠준다든가 산세바스티안 미라마르궁에서 벌어지는 ‘의학용 동물실험 시설 세미나’에 이것도 볼거리라 믿고 모든 부스를 찾아다니며 고급 문구 기념품을 챙겨 제3세계 극빈층 프리랜서들에게 부를 재분배해보는 실천 따위를. “시계는 시간의 양을 측정하는 기계가 아니라 그때 그 시절을 가리키는 나침반”이라는 걸 명심한다면 자질구레한 환전이나 호텔 침대 끝에 켜진 TV에서 쏟아지는 알 수 없는 말들이나 여권에 꽝꽝 찍히는 출입국 도장들조차 로망이 될 수 있다. 그 모든 사소함에서 로망을 뒤져내는 <여행자의…>는 여행쾌락주의자의 21세기형 구도서가 될 법하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로망으로 물들일 수고가 준비됐다면, 좀더 구체적인 길라잡이가 필요할 것이다. <뉴욕, 매혹당할 확률 104%>(탄산 고양이 글·그림/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와 <현태준·이우일의 도쿄 여행기>(현태준·이우일 지음/ 시공사 펴냄)는 개성 만점의 실천 여행담이다(이들이 <여행자의…>를 참조했다는 뜻은 아니다). <뉴욕, 매혹당할…>의 탄산 고양이는 일러스트레이터와 북디자이너 이전에 승무원이었다. “베이글을 손에 들고 무단 횡단하는 1%, 광란의 파티를 보내고 엉망이 된 드레스의 1%, 이 삭막한 정글에서 실패한 절망감의 1%… 그 많은 1%들이 모여 있는 뉴욕의 풍경은 딱히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고 승무원을 그만두게끔 충동질했다. 344만원으로 보낸 19박20일의 뉴욕 여행기가 불과 반년 만에 2만부라는 대박을 일궜다. 도쿄 두뺨칠 만한 물가의 뉴욕으로 값싸게 날아가는 법과 호텔 잡기, 걸어서 먹으며 이곳저곳 들쑤시기와 쇼핑하기 등 가냘픈 몸으로 체득한 온갖 정보가 주효했을 터. 하나 날렵통쾌한 일러스트와 글쓰기가 오히려 인기를 설명해준다. 가령, ‘뉴욕의 꽃미남 지도’는 만장일치의 여행서 <론리 플래닛>의 허를 찌른다.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가이드북이란 각 도시의 꽃미남, 꽃미녀 분포도와 그들의 출몰예상 지역 그리고 서식지가 표시된 안내 지도였다. …하긴 어릴 적 꽃미남치고 제대로 자라는 놈이 없다는 말처럼 폭탄에서 킹카로, 킹카에서 폭탄으로 신분 이동이 빈번한 현실을 감안할 때 그런 가이드북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긴 하다”라며 할 수 없이 그가 직접 만든 꽃미남 지도는 뒤이은 ‘도그워커,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과 어울려 흥미진진한 맛을 건넨다. 이 탄산 고양이에게 물었다. “특별히 영향을 준 여행서가 있나요?” “글쎄, <여행의 기술>에 공감했고 <뉴욕 미술의 발견>이나 <에도의 여행자들>도 좋았는데 여행의 신비함보다 여행의 사소함에서 뭔가를 느끼는 책이 좋더군요. 그래서 <현태준 이우일의 도쿄 여행기>가 아주 좋았어요.”
외견상 두책은 닮았다. <현태준 이우일의…>에는 개성 만점의 삽화가 곳곳에 끼어 있고, 남다른 감식안을 지닌 만화가들이 찾아낸 도쿄 골목골목을 사진으로 재배치해놓고 있다. 키득거리며 읽는 재미와 비범한 정보가 도쿄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도쿄를 서너번 다녀왔더라도 이 책을 보면 자신의 수박 겉핥기에 통탄할지 모른다). 그러니까 두 여행서는 짧은 시간에 도시를 누비는 법의 본보기로 손색이 없다.
2. 예술로 만나는 자유: 낙담에서 출발한 매혹적인 여행서편
흐느적거리는 감상이 최대한 배제된 여행서? 그 전문화한 여행서의 좋은 사례를 <스위스 디자인 여행>(박우혁 지음/ 안그라픽스 펴냄)에서 만날 수 있다. 타이포그래픽을 공부하러 본고향 스위스 바젤로 가서 보고 느낀 2년이 차곡히 쌓인 책이다. 뻑뻑할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여행과 디자인 가운데 어디로 분류할지 난처할 사서의 곤란함이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니까. 두 가지 재료가 혼합된 음식이지만 서로의 맛을 해치지 않게 완성시켰다고 할까.
대학에서 4년 동안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타이포그래픽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서 출발한 유학은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낯선 세계적 디자이너의 이름이 쏟아지지만 모던한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을 자극하며 이 간략한 서두는 후다닥 지나간다. 타이포그래픽에 대한 이해가 스르륵 들어올 무렵부터 근사한 디자인 기행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알프스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 프랑스, 독일과 국경을 딱 붙이고 있어서 식사와 등교와 출근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작은 도시 바젤부터가 매력적이다. 바젤 성당, 바젤 시청, 미틀레레 다리와 쿤스트 뮤지엄을 비롯한 미술관과 박물관 삼십개의 유람이 유학생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스위스의 과거와 현재는 모두 기막히게 디자인돼 있다는 게 발견된다. 그의 눈은 조금씩 밖으로 뻗어나간다. 그들의 여권, 기차역의 신호체계와 시계, 동전, 쓰레기봉투 등의 일상과 빨강과 흰색으로 교차된 국기처럼 미니멀하게 채색된 크리스마스와 카니발까지 ‘도시는 디자인이다’란 명제를 실천하고 있다. 취리히, 루체른, 로잔 브베, 몽트뢰 등 스위스 각지로 뻗은 여행기 역시 디자인이란 단어로 귀착된다. 무엇보다 글자와 사진의 크기와 배치까지 구석구석을 정성껏 디자인한 책 자체가 스위스 디자인의 축소판이다. 종이인쇄의 매력까지 새삼 깨우쳐주면서.
<박훈규 언더그라운드 여행기>(박훈규 지음/ 안그라픽스 펴냄)를 펼치면 늘 왼쪽 페이지는 글이고, 오른쪽 페이지는 그림(간혹 사진)이다. 글만 읽으면 가출이나 다름없이 시작된 한 청년이 거리의 예술가로서 단련돼가는 질풍노도의 성장담이고, 그림만 보면 노동의 수고가 배어 있는 화풍의 변천사다. 그리고 그 길은 시드니에서 런던으로 길게 돌아간다. 만화에 미쳐 있던 소년 박훈규는 가출과 자퇴를 거듭했고, 군 시절 휴전선에서 인상파를 깨우쳤다. 하지만 20대 중반 그의 수중에는 “돈과 지식, 경험, 기술, 친구 등 아무것도 없었”고, 50만원의 현금과 1년 안에 이용할 수 있는 비행기 오픈 티켓만 지닌 채 시드니에 도착한다.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막일꾼이 된 그는 거리의 예술가로 변신한다. 세계의 여행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며 생계를 해결하는 한편 그림 실력을 쌓아갔고, 피부색을 넘어선 그림 친구를 사귄다. 시드니를 떠나 런던에 도착한 첫날 밤을 워털루역에서 노숙으로 보내는 신세였지만,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로 원정 가서는 100년 전 르누아르 역시 자신과 똑같은 신세였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 사디(SADI)에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강의를 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의 신들린 듯한 이 여행기가 낙담에 젖어 있는 우리의 한구석을 부끄럽게 만든다.
<깜삐돌리오 언덕에 앉아 그림을 그리다>(오영욱 지음/ 샘터 펴냄)도 낙담에서 출발한 매혹적인 여행서다. 이미 여행은 캐나다에서 시작해 멕시코, 쿠바, 페루로 이어져왔지만 이 특이한 여행기의 시작점은 그 이후다. 심심할까봐 현지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던 저자는 문득 아마존강을 횡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마침내 아마존의 마지막 도시 벨렝에 도착한다. 거기서 그는 칼 든 세명의 일당에게 지갑과 시계, 카메라와 메모리카드와 스케치북을 빼앗긴다. 절망을 헤치고 곡절 끝에 현금을 마련한 뒤 기어이 여행을 이어나간다. 카메라를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스케치 100%의 여행기가 찍혀나왔을지 알 수 없으나, 그때부터 다시 그렸을 흑백의 스케치들이 눈을 홀린다. 그림체만큼 날카로워 보이는 신경줄을 늘 맥주와 와인으로 다스리는데 적당한 냉소와 체념이 삐죽삐죽 배어나오는 글맛이 그림만큼 일품이다. 특히 거대한 모아이 석상과 만나러 날아간 이스터섬에서의 독백과 에피소드가 압권이다. 단출한 유머도 잊지 않는다. “나폴리 인근. 16세기의 수녀원을 호스텔로 개조시켜놓은 이곳… 오늘 밤은 수녀님들의 영혼이 떠도는 18인실에서 혼자 자야 한다. 이건 여자 아홉명에게 둘러싸여 혼자 잤던 10인실보다 더 무섭다.”
스케치 여행은 남미에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런던으로 끈질기게 이어진다. 사진 한점없는 여행서가 알코올기 가득한 고독을 토해낸다. 하여, 문득문득 쓸쓸함에 몸부림치는 여행자가 있다면 이 책을 뒤적거릴지어다. 스케치에 휘감긴 고독이 훌륭한 길벗이 될 것이다.
나만의 여행 앨범 만들기
<여행보다 오래남는 사진찍기>(강영의 지음/ 북하우스 펴냄)의 강영의는 3년간의 승무원 생활을 접고 1년 동안 지중해와 남미를 쏘다녔다. 아마추어지만 카메라는 그녀의 분신이 되어 숨쉬듯 사진을 토해냈다. 집착은 억압이 될 수도 있음을 그녀는 잘 알았지만 여행 사진의 틀을 벗고 주관이 들어간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자유를 느꼈고 여행지의 대상과 한몸이 되어갔다. 몰래 찍거나 돈을 주고 찍거나 혹은 말로 허락을 구하면서 피사체를 존중하고, 세상 살아가는 작은 이치를 터득해간다. 또 이국의 풍물을 접하자마자 렌즈를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느낌이 올 때까지 긴 기다림을 거쳐 셔터를 누르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미학임을 알게 된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들고 가는 카메라와 여행지에 대한 예의를 <여행보다 오래남는…>은 고단하지만 진심어린 방식으로 들려주고 보여준다. 사진 찍는 노하우를 차근차근 전수받는 건 여행기에 얹힌 덤이다.
<여기는 베트남, 껌은 밥이다>(진유정 지음/ 성하출판 펴냄)의 진유정은 7년의 카피라이터 경력을 중단하고 베트남에서 2년간 한국어 선생으로 지냈다. 드러나지 않는 사연 때문인지 그녀는 어딘가 허기져 보인다. 그녀의 허한 눈과 혀와 가슴을 구원하는 주술인 동시에 정을 채워준 사건은 무궁무진한 베트남 요리들이었다. 호치민 자취집의 허름한 골목길 음식점, 수줍은 학생이 안내한 시장통과 거리의 상점들, 강 한가운데 배에서 배로 퍼나르는 뜨거운 국수 그릇에서 맛본 음식들이 예쁜 사진, 정겨운 사연들과 어울린다. ‘맛있는 그 집 주소’가 빠지지 않는 수십 가지 요리들과 만나다보면 ‘베트남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었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뒷부분에 호치민과 하노이를 벗어난 여행기가 따라오는데, 하롱베이만큼 고요하고 단아한 쭈아흐엉이나 경주 같은 베트남의 고도 후에, 그리고 깊은 산속 소수민족과 만나는 길이 나직이 펼쳐진다.
3. 머나먼 횡단: 세상의 지혜가 담긴 숭고한 순례서편
청년의 체 게바라는 위태로운 오토바이로 남미를 가로지르며 땅에 배어 있는 땀내음으로 혁명가의 체질을 다졌다. 대륙 횡단은 도시유랑 같은 찰나적 쾌락 포착과 정반대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고행의 순례이더라도 그 끝이 몸과 마음의 환기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 궁극의 효능은 다를 바 없다. 다만, 숭고한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데이비드 린치가 실화를 영화화한 <스트레이트 스토리>의 노인이 그랬다. 잔디깎기를 개조한 트랙터를 몰고 병든 형을 찾아 300마일의 기나긴 여행을 떠나는 노인을 보고 사람들의 고개는 갸우뚱해진다. 저 느려터지고 툭하면 고장나는 기계를 타고 뭘 어쩌자는 거지.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홍은택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의 홍은택을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컬러 눈동자들도 그랬던 듯싶다. 아이들 장난감 같은 몰튼 자전거를 타고 대서양에 앞바퀴 담그고, 80일 동안 6800km를 달려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해 뒷바퀴를 태평양에 적시는 행위가 웬 무모한 짓이란 말인가.
종합일간지의 워싱턴 특파원과 이라크전 종군기자를 지낸 그가 백수를 자처하고 떠난 이 기나긴 여행기는 짐싸기에서 시작한다. 자신과의 싸움은 여기서부터다. “짐의 무게는 그 사람의 집착의 무게다. 어떤 사람은 아예 떠나지 못한다.” 머리를 굴리는 것보다 몸을 움직이는 게 더 좋더라는 데서 자전거 여행의 이유를 찾지만 혹시 이런 건 아니었을까. “젊은 사람들은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산행을 떠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세상을 잊기 위해 걷는다.”
<아메리카 자전거 여행>은 엄숙하지 않다. 장장 600쪽에 이르는 두터운 책이지만 설렁설렁 읽혀나간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글답게 곳곳에 디테일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며 질주하는 트럭과 달려드는 개들, 오고가며 마주치는 세계 각국의 라이더들, 반기거나 못마땅해하는 주민들, 그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듯하다. 그들과 잠시 인연을 맺고 떠나는 그의 변화무쌍한 속내도 가감없이 묘사된다.
힘겹게 내딛는 발에서 이따금 던져지는 세상에 대한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사람이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창의적인 일을 하는 몇몇을 위한 이데올로기이며, 다수를 부려먹는 소수의 논리다. … 나는 ‘호모루덴스’이고 싶다. 놀면서 이 세상에 있다는 거,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외로운 여행자는 몸처럼 마음도 조금씩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더 즐거워진다.
<아프리카 트럭 여행>(김인자 지음/ 눈빛 펴냄)이나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달린다>(김선욱·마동욱·김매쇠 지음/ 한얼미디어 펴냄)도 횡단 여행기이긴 하나 고행길이라 일컫기엔 좀 섭섭하다. <아프리카 트럭 여행>의 시인 김인자는 갑자기 달려든 지독한 ‘허릿병’을 안고, 아이들은 떼어두고 머나먼 아프리카로 향한다. 버스 비스무레하게 개조한 트럭에 유일한 동양인으로 섞여 천막 야영과 밥짓기를 반복하며 아프리카 야생을 누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정을 쏟아내고 받는 아이들과의 사연이나 아마추어의 솜씨라고 믿어지지 않는 멋진 사진들이 인상적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는 좀더 단출하며 안전해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해 하바로프스크, 울란우데, 이르쿠츠크, 노보시비르스크, 모스크바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르는 9938km의 철길이 담담하게 이어진다. 4명이라는 일행의 크기가 안전해 보였으나 끝내 사고를 당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행 중 한명인 인터넷방송 비디오자키가 러시아 젊은이들에게 붙들려 몰매맞고 비디오카메라와 테이프, 여권, 현금 등을 모조리 빼앗긴다. 예기치 않은 사고는 유럽으로 이어가려던 예정된 일정을 끊어놓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