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드런>의 진나이란 인물을 좋아했기에, 한꺼번에 쏟아진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러시 라이프> <중력 삐에로> <사신 치바>를 단숨에 읽었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작가라더니, 지치지도 않고 순식간이었다. <러시 라이프>와 <중력 삐에로>는 인물도 조금 겹치면서 작가의 세계관, 인생관을 통째로 만날 수 있는 소설이었다. <사신 치바>는 만화적인 설정에 가벼우면서도 여운이 남는 연작 소품이다. 어떤 작품이든 경쾌하고 흥겹게 만날 수 있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 거야’란 작가의 말에 딱 걸맞은.
영화광이라는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은 대중문화나 과학 등 잡다한 것에서 끌어온 독특한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환갑이 지났는데도 록을 하고 있는 믹 재거를 보는 것도 싫지는 않아. 저렇게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멋진 어른이란 것도 나쁘지는 않아’라든가, ‘치타는 의외로 사냥감을 잘 놓친다더군… 지상 최고의 속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실패를 거듭하는 육식동물은 뭔가를 달관하고 있을 것이다’라든가, ‘몇 만년 동안이나 공존했어. 계속 발전하고 번영하는 크로마뇽인을 네안데르탈인은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을까. 나, 그게 정말 마음에 걸려’ 같은 문장들. 그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의미가 아니라 그냥 문장 자체의 즐거움에 만족하게 된다. 의미 같은 것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너무 의미만 생각하면, 즐겁게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카 고타로의 인생관은 무척이나 긍정적이다. 사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정체이고 가장 좋아하는 것이 음악이듯이,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는 일상은 가급적 삼가야 한다. ‘진짜 중요한 일은 평범하고 권태로운 일상 속에 있’다는 말처럼, 즐거운 것은 사후나 먼 미래가 아니라 사소한 일상이어야 한다. 물론 많은 이들은, 일상의 정체에 갇혀 있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그건 ‘벽에 부딪혔다고 본인이 착각하고 있는 것뿐이야. 사람은 모두 똑같아. 이를테면, 사막에 선을 그어놓고, 그 선 위에서 안 벗어나려고 벌벌 떨고 있어. 사방이 모래인데, 아무 데나 자유롭게 걸어가면 될 것을 선을 넘으면 죽기라도 할 것처럼 떨어.’
우리는, 우리를 얽매고 있는 무언가를 잊어버려야만 한다. ‘샤갈의 그림은 우리가 평생 소중히 간직해야 할 것을, 어리석게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 무엇을, 가볍게 웃어넘기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믿고 있는 것. 예를 들면 중력, 같은 것.’ 성공에의 욕망이나 질투심, 타인의 평가와 시선 혹은 체면이나 불안감, 권위 등등을 잊어버리는 것. 그걸 체현한 인간이 <칠드런>의 진나이다. 진나이는 오쿠다 히데오가 쓴 <공중그네>의 이라부와 비슷하면서도, 더욱 무위에 가까운 인간이다. ‘즐겁게 살면 지구의 중력 같은 건 없어지고 말아’라는 진술에 너무나 딱 들어맞는 사람. 물론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믿는 사람은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타입’이 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