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뮤지컬영화 팬들은 1950년대 중반 이전 작품만을 뮤지컬 장르의 진정한 얼굴로 생각한다. 그들은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의 RKO 시절 작품, 진 켈리가 춤을 추고 MGM의 아서 프리드가 진두지휘한 작품의 향수에서 쉬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뮤지컬영화의 마지막 전성기를 장식한 사람은 분명 리처드 로저스와 오스카 헤머스타인 2세이며, 요즘의 무대 뮤지컬에 반한 관객은 두 사람이 제작에까지 관여한 작품들에 더 익숙할 게다. 이들 콤비의 영화는 대규모 볼거리에 치중하고 이국적 풍광을 자랑하는 후기 뮤지컬 장르를 대표한다. 그중 <남태평양>은 걸작이 된 <왕과 나>나 <사운드 오브 뮤직> 정도의 위치에 오르진 못했고, 같은 해 발표된 MGM 뮤지컬 <지지>에 비해 봐도 영화적으로 뒤지는 작품이다. <남태평양>의 무대 연출을 지낸 조슈아 로건의 딱딱한 스타일은 그렇다 쳐도 매번 거론되는 과다한 컬러필터의 사용(무대의 조명과 비현실성을 강조하기 위해 노래장면마다 사용됐다)은 우스꽝스런 실험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남태평양>은 1950년대 최고 흥행작 중 하나일 정도로 대중이 사랑했던 영화였으며, 훼손되지 않고 수록된 노래들은 전부 고전이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다. <어느 황홀한 저녁> <그를 내 머릿속에서 당장 씻어내겠어> <발리 하이> <행복한 상상> 등을 듣노라면 잊혀진 멜로디를 되찾은 기분이 든다. 아나모픽 렌즈를 사용한 시네마스코프 영상이 아닌 파나비전 렌즈를 부착한 토드AO 카메라로 찍힌 최초의 작품인 <남태평양>은 기술적 측면에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한데, 특별판 DVD는 이를 감안한 듯 본편 리마스터링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부록 중엔 오랫동안 전설로 회자되던 ‘로드쇼 버전’(극적인 차이는 없지만 세세하게 14분 정도 더 긴 최초 공개 버전이다)이 주목할 만하다. 로저스와 헤머스타인 협회 회장과 뮤지컬 전문가 등이 진행한 두 버전의 음성해설은 가히 <남태평양>의 백과사전 수준이다.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의 촬영현장(14분), <남태평양 이야기>의 작가인 제임스 미치너가 소설의 배경이 된 바누아투를 1980년대에 방문했던 기록(22분), 1954년 <남태평양> TV 기념 공연에서 뮤지컬의 오리지널 멤버인 매리 마틴과 엔지로 핀자가 부른 노래의 발췌본(10분) 등의 부록은 자료로서 가치가 높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