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1945> 드라마 중 몽양 여운형이 암살 당하는 장면
KBS 드라마 ‘서울 1945’ 명예훼손 논란 제작진, 보수단체 반발에 “조기종영 계획없다”
1930년대 중반부터 1953년까지를 시대배경으로 한 한국방송 드라마 <서울 1945>가 해방공간의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에 휩쓸렸다.
논란은 지난 9일 국가사랑모임 등 25개 보수단체들이 모인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애국단체모임’이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건국인사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드라마의 조기종영을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공동 성명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장택상 전 총리가 몽양 여운형의 암살 배후에 있다는 듯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또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친일 인사로 표현했다”고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 자리엔 장 전 총리의 셋째딸 장병혜 박사도 참여했다.
이들이 가장 문제 삼은 장면은 장택상의 오른팔로 그려진 가상의 인물 박창주가 대통령의 불편한 심기를 읽은 뒤 홀로 여운형의 암살을 사주하는 것이다. 또 친일파의 딸인 문석경(가상의 인물)이 이 전 대통령의 수양딸 노릇을 하거나, 조선공산당의 ‘정판사 위폐사건’을 다루며 “이승만은 친일파 돈을 마음대로 쓰는데 우리가 위조지폐 만든 것이 무슨 죄냐”라는 주인공의 대사도 도마에 올렸다.
제작진은 “조기 종영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좌든 우든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해방공간에서 조국을 위해 자신이 믿는 이상에 따라 시대를 살아간 헌신적인 삶을 그리는 게 기획의도라고 밝혔다.
윤창범 피디는 “극 어디에도 이 전 대통령이나 장 전 총리가 직접 암살을 지시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이한호 작가는 “정확한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운형 암살을 극우단체가 사주했을 거라는 정황 증거는 학계에 많이 나와 있으며 극우의 대표적인 인물로 박창주를 내세웠다”고 밝혔다. 그는 “일제 시대에 부를 거머쥔 인물이 많은 한민당에서 자금을 받는 등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일 세력과 관련 있었던 건 사실”이라며 “그가 남쪽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신념을 가졌다는 점도 부각해 잘잘못을 모두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강준식 사무총장은 “누가 사주했는지 정확한 문서를 찾지 못했지만 정황 증거는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좌우합작을 추진하고 있던 몽양 여운형은 단독 정부를 수립하려는 극우 세력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묘사에 대해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학계에서 그와 친일 세력의 유착을 부정하는 의미있는 연구를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사회적 배경과 이념적 성향이 각기 다른 주인공 4명을 내세운 <서울 1945>는 이제까지 ‘빨갱이’로 매도됐던 중도좌파를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해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암살 경고를 받은 여운형은 이렇게 묻는다. “언제까지 피해 있으란 말인가? 단독 정부를 세워 조국이 둘로 갈라질 때까지? 냉전에 휘말릴 때까지?” 남로당에 가입한 인물들에서도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습을 잡았다.
이한호 작가는 제작의도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 시절엔 여러가지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세월이 지나 자본주의가 지상의 목표가 되고 그 외의 생각은 모두 ‘빨갱이’가 되는 사회가 됐다. 중도좌파도 나쁜 ‘빨갱이’라고 교육받은 사람들에게 다른 시각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하나의 통일체를 꿈꿨던 여운형 선생의 이야기를 해볼 시점은 되레 너무 늦었다.” 윤창범 피디는 “해방공간에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과 민초의 눈으로 바라본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를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