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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를 경험해보실까요?
2001-08-30

<기사 윌리엄>의 소재가 된 중세 기사들의 경기

<케이블 가이>라는 영화를 보면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하나 나온다. 짐 캐리가 ‘중세시대’(Medieval Times)라는 황당한 이름의 식당으로 매튜 브로데릭을 데리고 가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이름이 암시하는 것처럼 마치 중세시대의 경기장처럼 되어 있는 그 식당은 당연히 그냥 평범한 식당이 아니었다. 식사는 주문이고 뭐고 없이 중세시대식으로 무식하게 나오고 사람들은 먹는 것보다는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기사들의 결투에 온 신경을 쓰는, 일종의 테마식당 같은 곳이었던 것이다. 황당한 웨이트리스인 지니언 가로팔로의 퉁명스러운 모습도 그 장면을 오랫동안 기억나게 해주는 요소 중 하나.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그 장면의 핵심은 매튜 브로데릭을 직접 경기장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실감나게 싸우는 짐 캐리의 모습이었다. 마치 사생결단이라도 한 듯한 그의 모습에서는 섬뜩하면서도 웃긴 살기가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식당 ‘중세시대’는 영화 속에만 나오는 가상의 공간이 아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7개 지역에서 영업을 하고 있을 정도로 잘 나가는 일종의 관광명소인 것. 개인적으로는 캘리포니아로 출장을 갔을 때 우연히 창 밖으로 ‘중세시대’의 건물을 본 이후, 언젠가 기회가 되면 반드시 ‘중세시대’에서 밥 한끼 먹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죽 해왔었다. 그러다 지난해 가을 미국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휴양지 머틀 비치라는 곳에 들렀다가, 그 ‘중세시대’의 머틀 비치점에 가볼 기회를 잡았다. 그 경험을 짧게 요약하기는 힘들지만,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모두 6명의 출전 기사 중 한명의 응원석으로 자리를 배정받고 자기편 기사를 상징하는 색깔의 모자를 쓰게 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설명되지 않을까 한다. 식당안은 말 그대로 ‘식당’이기보다 진짜 11세기의 한 성 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타원형 실내경기장으로 꾸며 있었고,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는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기사들의 각종 경기 모습에 푹 빠져 열심히 응원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점은 영화에서와 똑같았다.

아마도 중세시대 기사들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의사(Pseudo) 체험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 ‘중세시대’ 식당은 이번에 개봉된 영화 <기사 윌리엄>과 많은 부분이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 다 서구인들의 깊은 내면에 깔려 있는 중세시대 기사들의 경기에 대한 향수를 상품화한 전형적인 예인 것. 자우스팅(Jousting)이라고 불리는 그 경기는 11세기 프랑스에서, 평화시에 기사들을 수련시키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경기 자체가 가지는 스펙터클로 인해 짧은 시간 동안에 스포츠화하기 시작했고, 결국 중세의 축제 때면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이벤트로 자리잡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일반 평민 혹은 농노들에게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기사들의 결투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절대적인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지금까지도 많은 서구인들에게 향수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초기 기사들의 경기는 우리가 <기사 윌리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창을 들고 싸우는 신사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날 정해진 진짜 무기 하나를 들고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형식이었던 것. 그것도 일대일 대결이 아닌 하나의 작은 전쟁 형태로 마을과 마을을 오가며 며칠씩 행해지기도 했다. 몇몇 교황들이 기사들의 경기를 금지하려 했던 것도 바로 그런 실전과 흡사한 위험성 때문이었다. 그러다 이른바 ‘평화의 창’이라고 불리는 부서지는 창이 나타난 것은 무려 200여년이나 지난 13세기가 되어서였다. 그뒤 본격적인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기사들의 경기는 당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잘 나가던 기사들의 경기는 16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사들이 입는 갑옷이 무거워지고 창도 부서지지 않는 재질로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이내 사라졌다.

구체적인 경기의 규칙은 간단했다. 모두 세번의 기회가 주어졌고, 만약 세번의 기회 동안 이렇다 할 승부가 나지 않으면 기사들은 말에서 내려 직접 무기를 가지고 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승부는 세번 이내에 결정이 되었는데, 이는 아주 간편한 점수제 때문이었다. 창을 상대방의 목에서 허리 사이에서 부러뜨리면 1점, 헬멧에 맞춰 부러뜨리면 2점, 그리고 상대방을 낙마시키면 3점을 주었던 것.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낙마시켰을 경우, 이른바 몸값도 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몸값으로는 갑옷이나 말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아내를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한 어떤 형식으로든 상대방을 죽이는 행위는 서로에게 손실이라는 생각 때문에 잘 일어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기사들의 경기를 아직도 즐기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에는 미국이나 영국과 같은 국가별 동호인 또는 연맹 홈페이지가 있고, 기사들의 경기만을 다루는 인터넷 웹진이 존재할 정도다. 또한 중세시대를 테마로 축제를 여는 많은 유럽의 도시들 중에는 기사들의 경기를 축제의 주요한 행사로 치르는 곳도 아주 많다. 서구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야만스러운’의 역사 속에서 참으로 많은 여흥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TV사극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역사와 관련된 여흥거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무언가 부족해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듯하다.

이철민/ 인터넷 칼럼니스트 chulmin@hipop.com

<기사 윌리엄> 공식 홈페이지http://www.aknightstale.com/

국제 자우스팅 연맹 홈페이지 http://www.theija.com/home.htm

`중세시대 홈페이지` http://www.medieval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