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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에는 없는 것, <엘리펀트 맨>
2001-08-29

영화에 대한 나의 인상적인 첫 번째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그때 당시 다니던 학교는 철도 밑으로 뚫린 굴다리를 지나야 하는 곳에 있었는데 하교 길에 그만 기둥에 붙어 있는 포스터에 넋이 나가버린 것이다.

제목도 찬란한 <별들의 전쟁>. 조지 루카스가 만든 <스타워즈>가 그런 제목으로 개봉을 알리고 있었던 것인데 웬일인지 나는 그 그림에 빠져들고 말았다. 라이트세이버를 들고 있는 루크와 그 밑에 요염한 자태로 앉아 있는 레이아 공주, 그리고 다스베이더. 게다가 C3PO와 R2D2의 모습은 코흘리개의 심장박동을 사정없이 증가시키고 있었다. 정신없이 그 앞에 서 있다가 어머니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더니 이미 해가 기우는 시간이 아닌가. 어머니께서는 평소와는 달리 집에 돌아오지 않는 아들이 걱정되어 여기저기를 헤매며 찾다가 하교 길 한가운데 넋이 빠져 있는 아들 녀석을 발견하신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두고 말씀하시는 바람에 지금 집사람이 굉장히 재미있어 하는 얘깃거리가 되고 말았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별들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스타워즈>가 개봉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다. 심지어 광팬을 자처하는 친구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어쨌거나 영화를 워낙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자라면서 최소한 TV영화는 빼놓지 않고 볼 수 있었던 나는 로셀리니, 펠리니, 히치콕, 존 포드 등의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젊었을 적 국방영화를 촬영하셨던 아버지는 충무로 입성이 좌절되자(도제방식으로 돌아가던 충무로의 촬영스탭들이 외부에서 영입되는 촬영감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하셨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있는 앨범에는 헌팅 때 찍었다는 배우 황해와의 사진이 남아 있기는 하다) 어쩔 수 없이 영화를 포기하셨지만 애정만은 포기하실 수 없으셨던지 끊임없이 영화를 보셨고 무척이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다. 어린 나이였지만 좋은 영화와 그렇치 못한 영화와의 차이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 영화를 볼 때 배우보다는 감독을 먼저 보고 고르는 습관도 그때 생긴 것이다. 아버지는 특히 히치콕이 얼마나 대단한 감독인지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아버지께서 그런 주장을 펼치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그 누구도 히치콕을 작가로 대접하고 있지 않았더라는 것이다. 상당히 영화 보는 안목이 있으셨던 게 아닐까….

그러고보면 옛날에는 TV영화의 수준이 상당히 우수했고 영향력도 셌던 것 같다. 지금이야 비디오 세상를 지나 DVD 천국이 돼갈 만큼 주변에 넘치는 게 영화니까 굳이 더빙된 대사를 읊고, 원칙없이 잘려나간 TV영화를 절절히 기다리며 볼 필요가 없지만 주말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아버지의 해설을 들으며 찬란한 흑백(!)화면 속으로 빨려들었던 시절이 그립다(궁핍했던 관계로 우리집은 컬러방송이 시작된 한참 뒤에도 여전히 모노톤의 화질과 음질을 감내해야 했다. 아, 물론 영화의 세계에 빠져드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영화를 볼 땐 두뇌의 ‘퍼지’ 기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막강해지니까).

아마도 그러한 기억들이 내게 영화를 좋아한다는 차원을 넘어 밑바닥 깊숙한 정서의 일부로 당연시하는 의식을 갖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어떻게 보면 가난했던 집안살림에 비해 영화적으로는 훌륭한 환경(흑백TV를 제외하고)에서 자랐다는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한다(축복받은 환경에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우리집엔 개봉관 초대권이 끊인 적이 없었다. 출처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버지의 과거 인맥과 관련있지 않을까).

그런 축복받은 환경에 속해 있던 나는 끊임없이 영화에 대한 욕구와 그것을 충족시키는 즐거움 속에서 무럭무럭 자랐다. 그러던 어느날, 내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과 태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는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이때까지 ‘영화랑 놀자’ 수준에서 맴돌던 내게는 충격 그 자체인 어떤 영화와의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까지 영화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은 단 한번도 식거나 달라지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재미와 흥분의 대상이었고 늘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당연한 일상의 친근함과 같은 것이었던 나에게 영화가 진지하고 예술일 수 있다는, 그리고 삶의 진실을 얘기하는 매체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해준 영화를 보게 됐는데 그 영화가 바로 <엘리펀트 맨>이었다.

토요일 오후 교육방송에서 방송되던 명화 시리즈 중 하나로 우연히 빈집에서 무심코 TV를 켠 내게 다가온 <엘리펀트 맨>은 여름방학을 코앞에 둔 까까머리 중학교 3학년 소년에게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것에 대해 가르쳐주었다.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영화를 감싸는 와중에, 흉측한 기형으로 태어난 존 허트의 삶이 너무나도 냉철하게 묘사되고 있는 이 영화를 통해 나는 영화란 무엇인지, 그 매체가 지니는 강렬한 표현력에 어떠한 감정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중에 이 영화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이고 실제로(?) 흑백영화인 것을 알게 됐지만 그때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물론 훌륭한 작품이고 컬트팬들을 거느린 영화지만 내가 열다섯 나이에 느꼈던 정서적인 충격은 그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아우라와는 상당히 다른 ‘어떤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뒤로도 많은 영화에서 <엘리펀트 맨>이 내게 주었던 그 ‘어떤 것’의 다양한 양상을 발견하고 행복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요즘에 개봉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을 보다보면 그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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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성호/ 모팩 스튜디오 시각효과 슈퍼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