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앨범 <Please>(1986) 이후로 죽 앨범 타이틀을 한 단어로만 지어온 펫 숍 보이스(이하 PSB)의 신보 제목은 <Fundamental>이다. 새삼스레 뜻을 들춰보면 이렇다(1번 뜻만 보겠다). 기본적인, 근원의, 최초의; 타고난, 본래의 성질[성격]에 속하는(<동아프라임 사전> 참조). fundamental은 원색, 기본형, 기본적 인권, 원리, 원칙, 기초음 따위의 말을 설명할 때 쓰는 단어다. 다소 강제적인 느낌을 주는 이 제목은 그러니까 이번 앨범을 통해 PSB의 음악의 근간이 무엇이냐를 보여주겠다는 뜻 같기도 하다.
최소한의 리듬구와 쉽게 따라 부르도록 쓰여진 멜로디, 닐 테넌트의 영하 4도C의 목소리와 예의 막막한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멜랑콜리함, 변함없이 복고적인 댄스 필(feel)과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우아한 믹스. <Fundamental>은 지금껏 우리가 PSB를 통해 충족해왔던 모든 것들을 빠짐없이, 그리고 오직 그것들만으로 채워넣은 음반이다. 그렇다면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뜻인가? 그렇지 않다. <Fundamental>은 들을수록, 나이 오십줄에 들어선 두 뮤지션의 정제력과 통제력에 대해 감탄하게 만든다.
<I’m With Stupid> <Minimal> <Integral>은 전형적인 댄스 팝이면서도 PSB만의 웅장함과 고고함의 매력을 뿜어내고 <Numb> <Luna Park> <Twentieth Century>는 테크노 발라드 음악에 지성을 결합시키는 그들만의 쿨함에 기초하는 트랙들이다. <The Sodom And Gomorrah Show>와 <I Made My Excuses And Left>는 PSB가 펼칠 수 있는 감성적 스펙트럼의 양끝 눈금을 가리킨다. 지성과 감성, 쿨함과 멜랑콜리함이 모순없이 양립하는 댄스팝 듀오 PSB만의 미덕은 이번 앨범에서 마치 해전의 소금처럼 꼭 알맹이만 남아 빛을 낸다. 새로움과 변화로 사람을 놀라게 하기는 쉽다. PSB는 과거와 비교해 전혀 새롭지 않은, 에누리없는 핵심만으로 우리를 녹다운시킨다.
PSB가 데뷔앨범을 내놓은 지 올해로 20년이 됐다. 신스팝의 전성시대가 80년대로 끝을 고한 지금 PSB가 이견의 여지없이 신스팝의 황제로 불릴 수 있는 까닭은, 단지 이들이 질기게 활동해서가 아니라 음악적 정체성에 관한 객관적 시선과 그것을 간결, 명확히 표현하는 통제력을 한꺼번에 지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자신들의 음악에다 세월의 변한 흔적을 남기는 일 따위를 PSB는 우회적으로도 하지 않는다. 지피지기면 백승이라 했고,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Fundamental> 이전까지 PSB의 가장 뛰어난 앨범으로 평가받은 것은 <Very>(1993)다. Very Fundamental. 말하자면 PSB의 음악은 이런 경지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