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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의 절제된 로맨스, <영혼은 그대 곁에>

EBS 6월11일(일) 오후 1시50분

<터미널> <우주전쟁> <뮌헨>의 스티븐 스필버그는 과거에 비해 흔들리고 있다. 좋게 말하자면, 그는 ‘드디어’ 생각을 하고 그러므로 불안해하고 그러므로 위태로워지고 있다. 모호한 가치를 특유의 유아적 감수성 혹은 이데올로기로 채색하던 스필버그의 세계는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가장 안정된 이때에 그 언제보다 불안정해 보인다. 그러므로 지금의 스필버그는 논외로 하자. 과거의 스필버그(물론 현재의 그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언제이건 다시금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는 미국 가족주의의 대명사다. 선과 악이 이분화된 세계에서 외부의 적에 오염되지 않고 순수성을 고수하는 가족적 가치 없이 그의 영화는 존립할 수 없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의 모순이 아니라, 초월적이고 영원한 가치로 보호되는 폐쇄된 세계다.

<영혼은 그대 곁에>는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전에 만들어진 스필버그의 로맨스다. 항공기를 타고 산불을 진화하는 조종사 피트(리처드 드레이퍼스)와 관제탑에 근무하는 도린다(홀리 헌터)는 사랑하는 사이다. 도린다는 죽음에 노출된 피트의 직업 때문에 전전긍긍한다. 그러던 어느 날, 피트는 불의의 사고로 죽고 도린다는 망연자실한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영화 <사랑과 영혼>과 같은 길을 걷는다. 피트는 영혼이 되어 도린다 곁에서 그녀가 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지켜주고 도린다는 점점 자신의 삶을 찾아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가 <사랑과 영혼>의 흥행에 가려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를 스필버그적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엔 뭔가 미진한 구석이 있다. 인물들의 관계나, 이야기의 구성이 지극히 소박하고 단선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재가 난 산을 가로지르는 항공촬영이나 적절한 시점에 사용되어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은 아름답고 화려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스필버그 특유의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매력은 배우들에게서 비롯된다. 영화마다 다른 얼굴이 되어 변신하는 홀리 헌터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존 굿맨, 그리고 죽기 전의 오드리 헵번 등의 존재감은 그 자체만으로도 영화를 꽉 채운다. <사랑과 영혼>이 우피 골드버그의 기막힌 코믹함과 낭만적 감성에 노골적으로 호소하는 작품이었다면, <영혼은 그대 곁에>는 사랑과 슬픔의 감정을 절제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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