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노폴리>를 보고 기시감을 느꼈다. 대한민국 1% 클럽이라…. 앗, 이건 내가 몇년 전 운영했던 바로 그 클럽이 아닌가. 대한민국에서 1%의 독특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만이 호감을 느낄 수 있는 내 주변 친구들을 규합해 만들었던 모임이었다. 몇년 전 <씨네21>에도 내가 고백했던 바, 회사 앞 술집과 홍익대 앞 삼겹살집을 전전하며 세계 평화를 논하던 우리와 비슷한 컨셉의 조직을 영화에서 만나다니 이렇게 반가울 데가….
<모노폴리>의 스타일과 어법 또한 우리 모임과 꽤나 유사한 구석이 많아 혹시 우리 클럽 중 한 멤버가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닐까 크레딧을 뒤져봤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아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 컨셉에 딱 맞았던 건 럭셔리를 지향하는 이 영화의 스타일이었다. 절대 은근하지 않고 화끈하게 ‘나 럭셔리야’를 외치는 그 호방함이라니. 1% 클럽의 리더인 존(김성수)의 집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이 만나는 장소마다 번쩍번쩍 부티가 주르르 흐르는데다 80년대 맥주 광고 달력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요트 면의 전면적인 화려함은 스타일에 죽고사는 최근 한국영화들에서도 보기 힘들 정도로 과감했다.
또한 ‘묻지마’와 ‘아님 말고’ 식으로 점철된 이 영화의 어법도 포스트모던을 추구했던 우리의 대화법과 꽤나 유사했다. 이를테면 존이 실수로 거액을 날린 1% 클럽 동료에게 모노폴리 주사위를 던져 그 결과로 모임의 퇴출을 결정하겠다고 싸늘하게 말한 다음, 그 결과와 무관하게 반짝이는 크리스털 ‘말’만 클로즈업한 채 동료의 투신으로 이어지는 장면의 신비스러움이나, 1% 클럽이 조성한 거액의 펀드가 국회의 승인이 없으면 만들어질 수 없었다는 국정원 간부의 날카로운 분석 뒤에 그 승인이 어떤 라인으로 났는지는 전혀 알려주지 않는 대범함 등은 서사적 글쓰기의 반란을 일으킨 보르헤스조차 울고 갈 초월적인 이야기 진행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한국 포크의 대부에서 암흑가의 대부로 변신한 한대수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의 지적인 유머감각은 어떤가. 이 역시 개연성이라는 너저분한 실밥은 제거한 채 실내 수영장에서 사우나를 하고 계신 보스와 비키니 차림의 앨리(윤지민)가 만나고 다음 장면에서 그대로 수영복 차림의 보스가 다이아몬드 반지를 앨리에게 건네면 앨리가 무시하고 지나가는 미니멀리즘적인 연출이 돋보이는데다 앨리가 지나간 뒤 보스의 ‘닭 쫓던 개’ 표정을 보여주면서 반짝이 스타일의 화려함과 이글거리는 눈빛이 작열하는 이 영화에 한 줄기 소나기와도 같은 싱그러운 웃음을 끼워넣었다. 화룡점정이로구나!
지면을 통해 1% 클럽 전 멤버들에게 고하노니, 우리의 화려한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모노폴리>를 꼭들 보시게. 하지만 보고나서 나한테 연락은 하지 마라. 악플은 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