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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있수다] 나만의 파도 소리
장미 2006-06-09

출근시간 지하철역, 무심한 표정의 사람들이 분주히 오간다. 3주 전 예전 직장을 다닐 때에는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버스에서 지하철로 갈아탈 때면 행여 늦을까 마음을 졸이며 발을 재게 놀렸다. 출발 직전인 지하철에 간신히 올라탄 것도 수십 번.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 안에서는 사람들의 체온으로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문을 향해 전진할 때면 발을 밟히거나 부대끼기 일쑤였고 조금 스쳤다는 이유로 옆 사람에게 눈을 부라리기도 했다. 가방이나 옷자락이 문틈에 끼는 사고로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기분 좋은 날도 있었다. 지하철역이 유난히 한산했던 어느 겨울. 추위에 몸을 떨며 4호선에 올라 신문을 읽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철이 동작대교를 건너느라 지상으로 솟아올랐다. 창밖에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와 눈이 부실 정도였다. 미몽 간에 어디선가 파도치는 소리를 들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생생한 파도 소리였다. 고개를 두리번거렸지만 갈매기 한 마리 찾았을 리 만무했다. 귓가에서는 여전히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갔다. 얼떨결에 위를 올려다봤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하철 손잡이 소리였다. 다리 위에서 지하철이 흔들리자 손잡이들이 허우적대며 서로 부딪히고 있었던 것. ‘겨울바다를 본지도 오래됐네.’ 비릿한 바다냄새를 맡은 것도 같았지만 짧은 순간이었다. 지하철이 동작대교를 건너자 파도의 철석거림은 금방 사라졌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자우림, <일탈>) 그때는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이 많을 때에는 밤 10시나 11시까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아침에는 기계처럼 일어나 회사로 뛰어갔고 저녁에는 지쳐 늘어진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출근 카드에 ‘지각’이라는 글자가 적히거나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로 친구와 한 약속을 저버려야 했을 때 매번 비슷한 푸념을 했던 것 같다. 휴일인데도 회사로 끌려 나가야 했을 때에는 맑은 바깥 날씨가 더없이 원망스러웠다.

영화기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조금 더 자유롭지만 바쁜 것은 여전하다. 하루하루 사투를 벌이는 상대가 바뀌었음에도 일이란 원래 힘들고 지겹기도 한 것. 그럴 때 나는 파도 소리를 듣고 싶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나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만큼은 아니지만 잠깐의 바다여행은 ’하품’ 나는 일상을 즐겁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이곳에서도 내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살아갈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