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고지향적인 인간이다, 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과거의 가치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그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 시절이 좋았던 만큼 지금도 좋고, 지금이 추악한 만큼 그 시절도 추악했다. 과거는 단지 과거일 뿐이다. 현재를 만들어낸, 과거. 하지만 가끔씩은, 한 단락이 지어졌다는 느낌 같은 것은 든다. 좋았다, 나빴다가 아니라 그저 계절이 바뀌듯 시간의 흐름 같은 것.
<스나이퍼>란 만화에서, 겐은 권투 경기를 보러 간다. 온천 마을 출신의 복서가 은퇴식을 갖는다. 세계 챔피언은커녕 국내 챔피언조차 되지 못한 삼류 복서의 은퇴식. 정상에 오르지도 못한 채, 이제 그는 청춘을 바친 링에서 내려간다. 그걸 지켜보면서 겐은 말한다. “감동했다. 이름도 모르는 삼류 복서가 10번에 걸친 종소리를 들으며 흘리는 눈물에. 난 복싱이 좋다. 하지만 ‘무엇’인가가 확실하게 끝난 듯한…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스나이퍼>는 한때 전문킬러였던 남자가 은퇴한 뒤 아무도 모르는 산골 온천장의 종업원으로 생활하는 이야기다. 험난했던 과거를 묻고 살아가는 온천장 주변 사람들의 사연은, 마치 80년대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래서 보면서도, 이게 21세기의 만화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다. 이 낡은 틀과 인물들을 통해서,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것일까. <스나이퍼>는 이미지와 속도의 세계에서 이탈된 사람들의 이야기다. 누구는 어쩔 수 없이 떨려났고, 누구는 자진해서 내려오기도 했지만, 어쨌건 그들은 21세기의 이방인이고, 이제는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다. ‘나한테는 취해 있을 때가 진짜 세상이고, 제정신일 때가 꿈속인 것 같아요…. 그래서 타인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는 거고… 누군가에게 이해받는 것도 귀찮고.’ 전직 스트리퍼인 토모코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자연에 맞추어 살아가려 한다. 하지만 유유자적하기만 하진 않는다. 필요할 때 토모코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철저한 프로 의식을 가지고, 프로로서의 할 일을 한다. 그것이야말로 <스나이퍼>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인간형이다.
<스나이퍼>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그게 거창한 것은 아니다. <스나이퍼>는 거대한 이야기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더 인간 자체에, 더 사소한 이야기로 파고든다. 그러면서 고리타분한 교훈들을 늘어놓는다. ‘나는 알고 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의 저마다의 고독과 절망을.’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는 건 쾌락이다.’ ‘남자들의 본질은 싸움과 영역 다툼과 전쟁이니까.’ ‘인간은 누구든 인생의 견본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이런 교훈들은, 사실 유치하고 시대착오적이다. 하지만 <스나이퍼>를 보다가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프로야구의 스타가 아니라 연봉 350만엔짜리 투수에게 응원을 보내는 겐처럼, 그런 고리타분한 가치관으로, 그런 시대착오적인 변방에서 살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