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Enjoy TV > TV 가이드
드라마 ‘연애시대’가 남긴 것
김소민 2006-06-01

행복도 불행도 아닌 여백이 준 긴 여운

이혼한 뒤에도 감정의 끈을 놓지 못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 에스비에스 〈연애시대〉(연출 한지승, 대본 박연선)는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불편한 드라마였다. 화면, 인물, 이야기, 어느 것 하나 머리 비운 채 볼 수 있을 만큼 전형적이지 않았다. 인물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다. 카메라는 인물과 거리를 유지하며 즉각적인 감정이입을 지연시켰다. 〈연애시대〉에 몰입하게 되는 첫 번째 이유는 이 텅 빈 공간에 있다. 생소한 드라마는 지난 25일 막을 내렸지만 긴 여운을 남겼다.

이 드라마가 거는 게임에 응하면 몰입의 강도는 세진다. 평균 10% 중반대 시청률에 머물렀지만, 요즘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 여성 20대(15.4%)와 남성 30대(12.1%)를 붙들어 맸다. 텅 빈 공간에서 자기 마음도 몰라 헷갈리는 동진(감우성)과 은호(손예진)를, 나아가 행복하지도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견디려 사랑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애시대〉는 쓸쓸했다. 부잣집 아들 현중과 활달한 미연을 끌어들여 상대적으로 발랄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더니 드라마 중반에 이들을 모두 이야기 밖으로 밀어버렸다. 유부남 대학교수 윤수와 동진의 첫사랑 유경이 나오며 드라마는 더욱 묵직해졌다. 후반부로 갈수록 〈연애시대〉는 사랑의 밑자락에 놓인 삶이란 큰 그림을 잡아냈다. “먹고 일하고 자고…. 지구의 이동진은 무얼 위해 살까.” 이 독백을 하면서도 동진은 신호등이 바뀔세라 횡단보도를 잽싸게 건넌다. 시청자가 동진의 독백에 동감할 즈음 “자기 연민에 빠져 배영을 치고 있네”라는 은호의 핀잔이 이어진다.

〈연애시대〉는 희망만 보는 낙관주의자나 절망만 되새기는 비관주의자를 위한 드라마가 아니다. 삶이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걸, 노력해서 얻는 결과가 항상 거창하고 달콤하진 않다는 걸 알아버렸지만 그렇다고 행복해지려는 발버둥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드라마다. 마지막회에서 은호의 긴 독백과 함께 여러 인물의 모습이 이어진다. 유방암에 걸린 은호의 동생, 동성애 커플…. 그 불행과 행복 속에 아이를 낳고 함께 사는 동진과 은호가 있다. “돌아보면 이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은호의 독백)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