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친구가 대화 중에 사소한 문제로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어깨에 ‘담’이 왔는데….”
“그건 ‘담’이 아니라 ‘쥐’라고 하는 거야.”
“‘쥐’는 다리에 나는 거지.”
“근육이 뭉친 게 쥐라니까.”
두 사람은 ‘네(이버)형님’에게 물어보기로 했고 네티즌은 다양한 답변을 내놓았다. 둘은 삼십분가량 토론을 벌였지만 첨예한 대립 탓에 끝까지 승자를 가려내진 못했다. 그러나 우린 단시간에 다양한 외과적 잡지식을 입수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일까. 우리는 앉아서도 귀가 셋 달린 쥐부터 수십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대한 네티즌의 평점이 7점대란 사실까지 샅샅이 알게 되었다. 가히 ‘사소함과 산만함의 시대’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요즘이다. 정보의 홍수를 벗어나기 위해 노아의 방주에 올라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하필’ 21세기에 살고 있단 사실에 감사하며 정보의 바다를 서핑한다.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을 듣다가 바비킴으로, 다시 코린 베일리 래의 노래로 바꾸기까지는 1분도 채 안 걸리는 나 같은 산만하고 변덕스러운 인간에게 인터넷은 최적의 유희 장소이니 말이다.
나는 최근 일본 드라마에 푹 빠져버렸는데, 블로거들의 추천 글이 정말 유효했다. 하지만 드라마 마니악으로 보이는 추천자들 가운데 한 가지에 몰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들의 블로그에 있는 TV드라마와 사진, 재테크와 ‘오이깎이’까지 다양한 메뉴를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관심사란 뉴런의 개수보다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사용 초창기, 명확한 중심 테마가 있어야 미덕인 것처럼 여겨졌던 개인 홈페이지 운영자의 강박증을 지금의 블로거들은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의 자유로움에 자극받아 나도 인터넷상에 내 공간을 꾸려놓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블로그냐, 미니홈피냐?
2006년의 한국을 사는 한량들은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해봤을 것이다. 블로그와 미니홈피는 각기 다른 매력이 있기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는 쥐새끼(마우스)를 앞세워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녔다. 미니홈피가 동네 반상회 분위기라면, 블로그는 정기 동호회모임 같다. 미니홈피는 수다스러운 친구처럼 시종일관 재잘거린다. 최근엔 아기 홈피까지 생겨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친척이 돼버린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사람들과 거리를 갖고 싶을 때마저 미니홈피는 심하게 재잘거리기 때문에 좀 질리는 맛이 있다. 게다가 방명록에 아무도 글을 남기지 않거나, 겨우 하나 남겨진 것이 광고성 글임을 알게 됐을 때 그 허탈감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생 헛살았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반면, 블로그는 시원시원한 화면에, 적당한 거리감으로 인한 덜 부담스러운 인간관계, 익명의 보장으로 인한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하다. 정보를 즉석에서 스크랩할 수 있고 로그 이동도 쉬우며 폴더 개수의 제한이 거의 없는 것도 블로그의 장점이다. 무엇보다 은둔 생활을 즐기는 이에게 블로그는 적당한 도피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역시나 단점도 있는 것이어서, 나처럼 오프라인상의 인간관계가 튼실하지 못한 사람에게 블로그는 군중 속의 고독을 심어주기 참 적당한 매체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나는 블로그와 미니홈피 중 어느 곳에 정착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고, 결국 양쪽 뇌를 분할하는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낮에는 실명의 미니홈피를 쓰는 ‘지킬’로, 밤에는 익명의 블로그를 쓰는 ‘하이드’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유비쿼터스 시대에 ‘정착지’를 찾으려 하는 것부터가 대단한 삽질일지 모른다. 인터넷은 우리가 어느 한곳에 발붙이지 않기를 종용한다. 나와 타인을 연결하는 연결고리가 많을수록, 즉 내가 갖고 있는 관심분야가 다양하고 관계 맺기 방식이 즉각적일수록 인터넷의 인맥은 입체적으로 변한다. 산만함의 합이 커질수록 가능성이 커지는 희한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은 이천 도자기 공장의 장인 홈페이지에서 뒤져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산만함은 21세기의 새로운 징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