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야기가 좋다. 휘황한 스펙터클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야기의 매혹에 당하지는 못한다.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안으로 들어가면 순간 눈으로 덮인 이세계가 나오는 것처럼, 잘된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는 그 이야기 속에 완전히 파묻혀버린다. 주인공이 되는 터무니없는 꿈이 아니라, 이야기의 모든 순간을 정말 옆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다나카 요시키의 말처럼 ‘지어낸 이야기도 좋아하고, 쓸모없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정열을 쏟아넣는 따위의 사람도 좋아’한다. 이야기에 뭔가 의미심장한 함의나 거대한 진리 같은 건 없어도 좋다. 허무맹랑하거나 신변잡기에 불과해도 뭔가 잘된 이야기이기만 하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런 보잘것없는 것들도 어디엔가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다못해 현실에서 잠시 도망치는 데에라도. 아님 말고.
역시 핵심은 ‘잘된’ 이야기다. 온다 리쿠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서 “잘된 이야기에 대한 감동은 모든 것이 제자리에 들어맞았다는 쾌감이다. 어째서 쾌감일까? 그리고 잘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이야기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인간에게는 몇 종류의 이야기가 입력되어 있는 것이리라. 입력된 이야기와 일치하면 빙고(!) 상태가 된다. 어째서? 픽션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제4 욕망인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에? 아마도 상상력이라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능력 때문이리라. 픽션을 추구함으로써 우리는 동물들과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마지막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그날부터 우리는 고독하고 복잡하며 불안정한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삼월은 붉은 구렁을> 보면 알 수 있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잘된 이야기의 전형 같은 소설이다. 동명의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1장에서 존재하지 않는 책, 2장에서 실재하는 책, 3장에서 앞으로 쓰일 책, 4장에서 지금 작가가 쓰고 있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앞과 뒤, 안과 밖이 교묘하게 맞물려 있다. 덤으로 온다 리쿠의 이야기와 책에 관한 사설들을 잔뜩 들을 수 있다. 모든 것이 어우러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하늘과 땅이 있고, 시작과 마지막이 있는, 그러면서도 무한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를 창조한다. 잘된 이야기란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을 걸작이라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명작이나 걸작은 임팩트도 있고 읽고 나서 감동도 하지만, 의외로 쉽게 빠져나가버리니까요. 잘 쓴 소설이 원래 그렇죠. 하지만 오랫동안 마음속 어딘가에 걸리는 소설은 그런 게 아니에요. 어딘가 미숙하고 완성도는 낮아도, 개성이 강한, 독창성 있는 작품이 오히려 인상에 남죠”란 말처럼,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 대한 최고의 칭찬은 ‘잘된 이야기’라는 평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