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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칼럼] 카메라와 나
최하나 2006-05-05

처음 비디오카메라를 갖게 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소니에서 나온 작은 캠코더로 값이 200만원을 웃도는, 그야말로 눈부신 고가의 제품이었다. 눈 딱 감고 하나뿐인 통장을 깼다. 흥정을 위해선 현찰 박치기를 해야 한다는 말에 만원권 뭉치를 들고 잔뜩 긴장한 채 남대문 상가를 누볐다. 그렇게 손에 쥔 카메라는 정말이지 빛이 났다. ‘이제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거야!’ 웅대한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도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조차 없었던 나는 ‘후진’ 그림만 주야장천 찍어댔고, 한 학기를 마친 뒤 받아든 촬영 수업의 학점은 참담 그 자체였다. 공부 못하는 애가 책가방 탓한다고, 나는 모든 실망과 분노를 카메라에 퍼부었다. 첫날의 감격은 힘없이 사그라들었고, 카메라는 육중한 케이스에 넣어진 채 옷장에 처박혔다.

미국에서 잠시 살게 됐을 때 카메라를 챙긴 건 순전히 과제 때문이었다. 실기 수업을 들어야 했으니까. 이민 가방 두개를 양손에 든 채 카메라 가방을 간신히 둘러메고, 나는 기숙사에 입주했다. 생활은 쉽지 않았다. 내겐 라운지에 모여 깔깔대는 아이들 틈을 파고들 용기가 없었고, 방문을 두드리고 날 소개하는 것은 왠지 구차하게 느껴져 싫었다. 매일 수업이 끝나면 방 안에 틀어박혔다. 완벽한 아웃사이더가 될 것 같았다. 그때 구세주처럼 번뜩 떠오른 것이 카메라였다. 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도 타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그건 바로 나의 얼굴 대신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캠코더를 나침반 삼아 기숙사를 헤매기 시작했다. “내 다큐멘터리 소재를 찾고 있어.” 이 한줄의 문장이 수줍은 얼굴에 철판을 씌워줄 주문이었다. 작은 마법은 놀랍게도 효력을 발휘했다. 처음에는 별나다는 듯 날 바라보던 그들이 신기하게도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학업, 진로, 연애… 모든 것이 소재였다. 온갖 신변잡기를 무차별로 수집하던 중 일본인 유학생 유카를 만났고, 스무살 연상인 흑인 교수와의 사랑 이야기에 끌렸다. 몇달 동안 그녀 뒤를 졸졸 따라다녔고, 그렇게 소녀들의 수다 같은 내 생애 첫 다큐가 완성됐다.

학교를 졸업하고, 보도 촬영을 업으로 택하면서 내겐 ENG카메라가 주어졌다. 위압적인 몸체와 방송국 로고는 이전에 없던 대담함을 불어넣었다. 격렬한 시위의 현장이건 고위급 장관 회의이건 카메라는 언제나 불문의 통행증이었다. 하지만 부여된 권력의 무게만큼이나 사람들은 그를 멀리했다. 소통의 수단보다는 기피의 대상이었고, 싸움과 경쟁의 회오리 속에 휘둘러야 하는 하나의 무기였다. 어느새 나는 카메라를 내려놓을 순간을 더 기다리고 있었다. 일을 하지 않는 동안은 그를 멀리하고만 싶었고, 내 작은 캠코더는 다시 한번 옷장 속에 자리를 잡았다.

첫 직장을 떠났고, 글 쓰는 일을 하게 된 지금 나의 카메라는 아직 그 자리에 있다. 일상이 안겨준 게으름 탓이겠지만, 가슴속 작은 마법의 흔적이 퇴색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정말 미안해. 내가 너무했지? 슬쩍 사과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그렇게 그를 손에 쥐고 다시 한번 빨간 레코딩 버튼을 누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