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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딱하게 보기] 약자를 공격하는 당신은 비겁자, <크리미널 마인드>

범죄물에 나오는 연쇄살인마들을 프로파일하면 대개 어렸을 때 학대를 받았다고 나온다. 폭력의 희생자였던 그들은 폭력에 저항할 만한 나이가 되어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기도 하고, 전혀 무관한 대상을 찾아 다시 폭력을 휘두른다. 자신이 당한 폭력을 인지하는 경우도 있고, 무의식 속에 감추어버린 경우도 있다. 어떤 쪽이건 끔찍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동일하다. 하지만 <크리미널 마인드>의 하치 요원은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지만 정상적으로 성장했고, <FBI 실종수사대>에는 똑같이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지만 형은 범죄자가 되고 동생은 요원이 되는 경우가 나온다. 학대가 정서적 불안이나 심각한 심리적 손상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로지 성장기의 환경 때문에 한 인간이 잔악한 살인마로 변한다는 데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란 복잡하면서도, 나약한 존재다. 범죄물이나 실제의 범죄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자신이 당한 학대나 폭력 등을 자신보다 약한 이들에게 전가할 때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자신이 어떤 이유로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했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 것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이 받은 고통을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자신의 소외를 타인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불안감을 극단적인 폭력으로 해소하려 한다. 직접적으로 약자를 공격하는 것은, 언제나 그들보다 약간 우위에 서 있는 또 다른 약자들이다. 세상에 복수하고 싶다고 떠벌리는 범죄자들은,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가장 약자인 어린이와 여성, 노인을 공격하기 일쑤다.

개인적으로, 나는 복수를 인정한다. 누군가에게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면, 그것을 어떻게든 갚겠다는 절박함에 동의한다. 무차별적인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분명한 목적을 가진 특정한 대상에 대한 폭력은 용인할 수 있다. 이를테면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어느 정도 폭력이 인정되는 것처럼. 물론 무협지에 늘 나오는 것처럼, 복수의 악순환을 끊는 것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 무한한 관용을 베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세상은 복수의 악순환으로 점철된다. 결과는 늘 강자의 일방적인 보복으로 끝나지만.

아마도 그래서가 아닐까? 강자에게 복수하는 대신에, 약자를 선택하는 것은. 결국 그들은 비겁한 것이다. 한심한 자신들의 강함, 우월감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보다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하긴 그건 범죄자들만의 소행이 아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자신보다 약자들을 찾아서, 뭔가 부족하거나 허술한 사람들을 찾아 잔인하게 조롱하고 비하하는 것. 그렇게 모욕을 주고, 비웃으면서 자신의 우월함을, 자신의 안전함을 만끽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인간들이 성공하는 게, 이 세상의 보편적인 풍경 아니던가. 차라리 범죄물의 연쇄살인마들은 잡혀서 벌을 받기라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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