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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

투덜군, <엑소시즘…>에서 악마의 찌질한 행동양식에 분노하다

알다시피 <엑소시스트>라 하면, 1973년을 버리버리벌벌벌 떨게 했던 전설의 공포영화다. 그런데 자타가 공인하는 귀신무서워하기계의 권위자인 필자는, 신기하게도 이 영화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특히, 미국 개봉 당시 졸도 관객을 양산했다고 전해지는 그 유명한 ‘360도 목 돌아가기’ 장면은 오히려 상당히 코믹하게 느껴졌더랬는데, 그 천진난만한 악마의 옹알이와 함께 사장실 회전의자 돌아가듯 돌아가던 그 목, 상당히 귀엽지 않았나요? 뭐, 아님 말고. 여튼.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는 그러나, 이러한 <엑소시스트>의 영향으로 완전 방심 상태로 관람에 임한 필자를 실로 오랜만에 바짝 쫄게 하였다. 물론, 기독교 교리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 설파하는 듯한 당 영화의 주제의식은 상당히 거북살스런 것임에 틀림없었다만, 뭐 딱히 기독교도라서 <벤허>를 재밌게 봤던 건 아니니까.

사실 필자가 당 영화에 대해서 문제를 느끼는 대목은, 그런 종교적인 부분이 아니라 악마의 라이프 스타일에 관련된 부분이다. 영화를 본 관객은 알겠지만, 당 영화의 악마는 항시 새벽 3시 정각에 나타나 사람들의 단잠을 깨우는 독특한 습성을 보인다. 그것도 그냥 새벽 3시 무렵이 아니라, 1초 에누리도 없는 03시 0초다. 나아가 얘는 자신의 칼 같은 시간관념을 과시코자 그 시간에 시계를 멈춰놓고 가기까지 한다. 이거 도무지 민폐가 아닐 수 없다. 덧붙여, 악마에게 ‘새벽 3시 어택’을 받은 피해자들의 시계가 표준시에 정확히 맞춰져 있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악마가 나타난 시간이 실제 03시 0초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는 자신의 ‘새벽 3시 정각’ 컨셉을 부각시키기 위해 시계 숫자판이 03시 0초가 될 때까지 줄창 시계 앞에서 삐대고 앉았었다는 얘기가 되는 바, 이는 신과의 정면대결 같은 유니버설한 짓을 일삼는 악마로서는 대단히 찌질한 행동양식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하나, 이보다도 더욱 찌질한 점은, 바로 이 악마가 자신에게 지대한 예술적 영감을 준 이에게 아무런 존경의 염도 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 영화에서 악마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하여 ‘에밀리’의 몸을 써서 각종 기상천외한 애크러배틱 동작들을 선보이는데, 이 애크러배틱 동작의 원형은 의심할 여지없이 공옥진 여사의 그 유명한 ‘병신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악마는 자신을 영화의 소재로 만들 만큼 충격적인 비주얼을 창조해내는 데 결정적인 영감을 준 예술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과연 악마다운 싸가지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자신에게 영감을 주거나 예술적 토양을 마련해준 노장들에 대해 예를 갖추기는커녕, 깨끗이 쌩까고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 작금의 세태인 듯하다. 한숨이 난다. 신상옥 감독 역시 그렇게 영화판의 외곽에서 쓸쓸하게 가실 일이 아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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