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의 첫장은 재미가 없다. 온통 발명·기술·사회상황에 대한 기술뿐이어서? 아니다. 그건 그 시대의 영화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글로 상상하라니 심심할밖에. 이런 상황에서 <보지 못한 영화들: 초기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 1894∼1941>은 살아 있는 유산이다.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의 생성·발전 과정을 목격하는 기회(이 시기의 진정한 아방가르드 작품집으로는 장 엡스탱의 <삼면 거울> 등이 수록된 <아방가드르: 실험영화 1920∼1930>이 더 매력적인 선택이다)란 명목 외에 이 박스 세트의 가치는 당시 사람에게 새로운 기술인 ‘움직이는 사진’과 ‘카메라’가 과연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지 살필 수 있다는 데 있다. 7개의 주제로 분류된 150여편의 작품에는 오슨 웰스나 G. W. 그리피스 같은 유명인의 영화는 물론 잊혀진 사람의 것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이야기하기를 진지하게 고민한 게 있나 하면, 사운드 테스트를 위한 엔지니어의 기록도 있고, 추상미술과 음악을 혼합한 실험이 있으며, 그냥 주변의 풍경을 찍어댄 것도 있다. 그들은 ‘영화’에 대해 고민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엔 말 그대로 ‘카메라를 든 사람’이 ‘카메라’란 물건으로 과연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고 흥분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후 대중예술로 자리잡은 영화는 스튜디오와 전문 영화인의 손으로 넘어갔으나 영화를 개인과 삶의 영역으로 되돌리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그중 영국에서 ‘프리 시네마’로 명명된 영화 프로그램(혹은 운동, 장르)이 탄생한 1956년을 우린 잊을 수 없다. 1959년까지 이어진 ‘프리 시네마’는 기존 영화산업에 대항하는 젊은 영화인들이 만든 프로그램으로서, 노동자·하층민·젊은이·아이들의 삶에 밀착하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중·단편을 상영하고자 했다. 그리고 삶의 현장을 담겠다는 욕망에 거리로 뛰쳐나간 그들은 영국 뉴웨이브영화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총 여섯번의 ‘프리 시네마’ 프로그램 중 <오 꿈의 나라> <크리스마스를 빼고 매일> 등 영국영화를 상영한 1, 3, 6번째 것과 ‘프리 시네마’에 영향을 받은 작품을 수록한 <프리 시네마>에는 영국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린제이 앤더슨, 토니 리처드슨 외에 클로드 고레타와 알랭 태너 같은 외인부대의 이름도 있다. 두 작품집의 영화에선 대중영화 감독의 자의식보다 카메라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이 느껴진다. 한편에선 카메라를 든 자가 기록한 순수한 순간이, 다른 한편에선 카메라가 가장 건강했던 시절의 기억이 묻어난다. <프리 시네마>는 다큐멘터리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수록하고 있으며, 두 작품집 모두 충실한 해설책자가 제공된다.
[DVD vs DVD] 카메라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
글
ibuti
2006-04-28
<보지 못한 영화들: 초기 미국 아방가르드 영화 1894∼1941> vs <프리 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