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이런 거다. <크래쉬>는 나에게 미국의 인종차별 이야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대로 이런 것도 있다. 프랑스 영화지 <카이에 뒤 시네마>는 아시아영화 <내 곁에 있어줘>를 2005년 최고의 영화로 꼽았다. 타자의 삶을 보다 감동에 취하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한 영화가 감동을 주거나 아니면 무반응에 머무는 것은 결국 접근방식, 보편성, 진정성 이전에 영화와 연출의 마술이란 영역에 속한 문제 같다. <후프 드림스>는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다시 물어보자. 어떻게 해서 지식인 백인 중년 남자가 게토에 사는 두 흑인 소년(사진)의 이야기에 끌리게 된 걸까. 에버트는 “미국인의 삶을 이렇게 잘 보여준 영화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후프 드림스>에 대한 호평을 늘어놓는다 한들 한국에서 흑인이 주인공인 세 시간짜리 다큐멘터리 DVD를 선택할 사람은 몇 없어 보인다. 그래도 <후프 드림스>에 대해 기어코 이야기해야겠다. 왜냐하면 이보다 감동적인 드라마를 접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후프 드림스>는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에 강렬하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접근한 영화다. 애초 30여분되는 단편을 만들려던 스티브 제임스와 친구들이 이후 두 소년과 이들 가족과 7년 가까이 시간을 나누었기 때문일까. 희망과 꿈을 섣불리 찬양하지 않고, 고난과 좌절 앞에서 쉽게 동요하지 않는 영화의 자세는 영화 속 실제 인물들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다시 에버트의 말을 빌리자면 <후프 드림스>는 “영화란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준 영화”다. DVD 부록은 심심하다. 뮤직비디오와 예고편이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