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조셉 폰 스턴버그 감독의 독일영화 <푸른 천사>로 전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한 독일 출신의 여배우 마를렌 디트리히는 그레타 가르보, 잉그리드 버그만 등과 함께 유럽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여배우의 하나이다. 폰 스턴버그와 함께 할리우드로 건너간 뒤 첫 번째로 함께 만든 영화 <모로코>에서 그는 전세계 영화팬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힐 불멸의 이미지를 창조해내었는데, 중성적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연미복과 중절모 그리고 허스키하게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자신만의 강렬한 존재감을 은막 위에 옮길 수 있었다. 동시에 이국적인 외모와 발성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디바의 이미지로 발현되었는데, 이웃집 소녀 같은 이미지의 동시대 할리우드 보통 여배우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강렬한 아우라로 할리우드 역사에 전설로 남을 수 있었다. 이번에 미국 유니버설에서 발매된 마를린 디트리히 글래머 컬렉션에 포함된 <모로코>를 통해 이러한 전설의 시작을 눈으로 직접 체험하시라. 또한 같이 수록된 네편의 작품 <블론드 비너스> <스페인 광상곡> <뉴올리언즈의 불꽃> <골든 이어링> 등을 통해 디트리히의 이미지가 할리우드에서 어떻게 차용되고 재생산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을 확인해볼 수 있다. 그리고 빛의 마술사라고 불렸던 폰 스턴버그의 작품이 <모로코> 이외에도 두편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그의 최전성기였던 1930년대 초·중반의 작품 궤적을 추적해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이다.

유니버설에서 새롭게 기획된 시리즈인 ‘글래머 컬렉션’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들의 작품을 엮은 컬렉션으로 디트리히 외에도 메이 웨스트, 캐럴 롬바드 등이 동시에 발매되었는데, 무엇보다도 현재까지 DVD로 접하기 어려웠던 할리우드 황금기, 특히 1930년대 초반의 작품들을 대거 수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시 이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제작비를 절감하기 위해 양면-듀얼레이어로 제작된 타이틀은 작품의 명성만큼의 DVD 퀄리티는 보장해주지 못한다는 점이 못내 아쉬운데, 고도의 복원 과정을 통해 발매되고 있는 다른 고전영화들에 비해 AV적 쾌감이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서플먼트 역시 예고편만을 제공하고 있어, 컬렉션의 상업적 잠재력을 충분히 제고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올해 할리우드 거대 스튜디오에서는 유니버설의 글래머 컬렉션 이외에도 클라크 게이블, 베트 데이비스, 베티 그레이블, 존 웨인 등과 함께 세실 B. 드밀, 존 포드 등의 감독 컬렉션 등이 순차적으로 발매될 계획이어서 고전영화 팬들에겐 최고의 해임과 동시에 재정적으론 최악의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