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매리 시리즈 찍은 ‘굴렁쇠’ 함영식씨의 비법
왜 ‘굴렁쇠’인가 카메라를 새로 사게 되면 누구나 한동안은 해외여행을 꿈꾸곤 한다. 이국적인 풍광을 찍기 위해서라면 경제적 곤란은 잠시 접어두자는 호기도 생긴다. 하지만 세렝게티와 알프스에 간다고 누구나 근사한 사진을 찍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고민에 빠진 초보자들이라면 ‘굴렁쇠’ 함영식씨의 사진을 눈여겨보자. 굳이 멀리 갈 필요없다. 눈 크게 뜨고, 집요하게 쫓아다니면 된다.
‘굴렁쇠’는 어떻게 고수가 되었나 안경 도매업을 하는 함영식씨의 취미는 원래 모형자동차 수집이었다. 3년 전 똑딱이 디카보다는 웃돈을 주고 하이엔드급 디카를 샀던 것도 그저 모형자동차를 예쁘게 찍어서 남겨두려는 생각에서였다. “아버지에게서 카메라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들이 어릴 때 부럽기는 했다. 다만, 사진은 돈이 많이 드는 고급 취미라고 생각해서 아예 그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디카가 보급되면서 내게도 우연히 기회가 왔다.” 그는 춘천에 삶의 터전을 잡은 것을 뒤늦게 행운으로 여기고 있다. “안개가 많이 끼는 날씨 탓에”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경치들이 즐비해서다. 게다가 겨울이면 “70, 80마리 넘는 독수리가 날아드는” 신매리나 “사슴들이 제멋대로 뛰노는” 남이섬을 곁에 뒀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나.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기록해두고 싶다”는 그는 신매리 촌부들을 역동적으로 잡아낸 사진 연작으로도 이름이 꽤 알려졌다. “처음엔 욕 많이 먹었다. 욕 먹고나서 뻘쭘하게 그 앞을 왔다갔다 시간만 축낸 적도 많았고. 허리 굽혀 일하시는 분들 눈에는 카메라 메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그저 놀러다니는 유흥객으로 보일 테니까 당연한 거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어 그나마 몇장 찍은 사진 들고 계속 찾아뵀더니 마음을 주시더라.” 이제는 촌부들과 어울려 대낮부터 술잔을 기울일 정도가 됐다는 그는 카메라 들고 나서 수줍던 성격에 넉살도 늘었다고 전한다.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면 죽은 사진”이라고 여기는 그는 앞으로 10년 동안 꾸준히 신매리를 찾을 계획이다.
디카 고수가 되려면 “비 오고 눈 오고 바람 부는 날이 훨씬 드라마틱하다. 그런 날 카메라 고장날지 모른다고 집 안에 있으면 안 된다. 카메라가 신주단지는 아니잖나. 카메라는 잘 고장나지 않는다. 주변에 잘 찍는 사람들 보면 카메라 아끼는 사람 없다. 내 카메라도 매뉴얼 표시가 이미 지워졌다. 디카는 컴퓨터랑 비슷하다. 아무리 최신형이라고 하더라도 6개월만 지나면 신제품이 나오고, 가치도 반으로 뚝 떨어진다. 그러니 그 기간 동안에 최대한 빼먹어야 한다.”
잃어버린 유년 시절을 찾아서악동 시리즈 찍은 ‘한눈으로’ 서두일씨의 비법
왜 ‘한눈으로’인가 ‘한눈으로’ 서두일씨는 사실 인터뷰 대상자로 부적격이다. 지난해 인테리어 일을 그만두고 웨딩 전문 스튜디오를 차린 ‘프로’이기 때문. 하지만 온라인 갤러리 레이소다에서 12만여명이 보고 갔다는 <복수는 나의 것>을 찍을 때만 해도 그는 ‘아마추어’였다. 무엇보다 그가 순간적으로 집어내 들려준 시골 악동들의 깔깔거림은 한번 들으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유년 시절을 홀랑 까먹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유쾌한 환청을 들려주고 싶었다.
‘한눈으로’는 어떻게 고수가 됐나 구형 필름카메라를 손에 넣은 뒤 “친구도 찍고 별도 찍던” 때가 열여덟. 스무살부터는 디자인 일을 위한 업무용 사진을 찍기도 했으니 벌써 20년 가까운 경력이다. 하지만 그는 그때는 사진을 몰랐다고 말한다. “큰형이 아는 분 중에 사진작가가 있었는데 우리 집 공장에서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있는 그대로를 찍는 게 아니라 뭔가를 만들어서 찍는 걸 처음 보고서 아, 사진이란 저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날의 깨달음 이후 출사를 부지런히 다니긴 했지만, 여전히 혼자만의 놀이였을 뿐이다. 그러던 그가 2003년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쥐게 됐다. 카메라점 아저씨의 ‘강추’에 넘어가 중고 니콘 D-100을 덜컥 샀던 것이다. 정보를 얻기 위해 동호회에 가입해서 1년을 활동했지만, 그는 그때만 해도 “사진보다는 사람들 만나는 게 더 좋았다”고 한다. “디카가 내 인생을 바꿨다”고 느낀 결정적 순간은 율문리 아이들을 만나면서다. 2004년 그는 한 동호회 회원에 이끌려 마지못해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가 시외 골목에서 코흘리개들을 만났다. “아이들이 노는 걸 보다가 난 저만한 나이에 뭐하고 놀았나 싶더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말뚝박기, 전쟁놀이 등 그는 이후 골목길과 초등학교를 돌며,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을 하나둘 재연하는 재미에 흠뻑 빠졌다. “내가 원래 개구쟁이였다”는 그의 악동 연작은 몇 십년 지나 뒤늦게 쓰는 일기인 셈이다. “학교생활이든 방과 뒤든 좀더 자주 만나 아이들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가보고 싶다”는 그는 정작 자신의 두 아들 사진은 별로 찍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덧붙인다.
디카 고수가 되려면 “자동 기능에 의존해선 내 것을 건지기가 어렵다. 무엇보다 똑딱이 디카든 고급 디카든 눈감고도 조절이 가능할 정도로 카메라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카메라가 눈감고도 가려운 부위를 긁을 수 있는 몸처럼 느껴져야 한다. 평소에도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는 게 중요하다. 순간 포착을 놓치지 않기 위한 필수 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