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뽑기 재미는 없이 냉혹함만 기량 보여주기보다 결말만 부각 규칙·기준 불투명 결과도 의문 인간본성 보여주는 미국프로와 대조
치열한 경쟁 끝에 한 사람만 살아남는다. ‘리얼리티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냉혹하다. 4편까지 방송된 에스비에스 <슈퍼스타서바이벌>이나 지난 9일 첫 편이 나간 한국방송 <서바이벌스타오디션>도 ‘잔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냉혹함은 이런 류의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재미의 본질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니 이것만으로 비난하긴 어렵다. 경쟁이 긴장감을 낳고 시청자는 때로 치졸하게 돌변하는 인간 본성을 맞닥뜨리게 된다. 문제는 두 프로그램이 냉혹하되 그만큼 흥미진진하지 않다는 데 있다.
두 프로그램의 형식은, 큰 인기를 끈 미국 폭스티브이의 <아메리칸 아이돌>, 엔비시의 <어프렌티스>와 닮은 꼴이다. <아메리칸…>으로 켈리 클락슨 등이 팝스타가 됐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있는 이 프로그램 팬카페에는 1만2천명이 가입했다. <어프렌티스>에서는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연봉 25만 달러(약 3억원)를 걸고 최고경영자를 뽑는다.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은 <어프렌티스> 시즌4를 내보내고 있고, <어메리칸…> 시즌4를 13일부터 재방송한다.
물론 <아메리칸…>과 <어프렌티스>는 미국인의 감수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아메리칸…>은 성공 신화를 자극하며 <어프렌티스>의 출연자들은 돈을 좇아 물불 가리지 않는 것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그래도 이 프로그램의 인기 비결엔 한국인들도 공감할 만한 부분이 꽤 있다.
<슈퍼스타서바이벌>과 <어프렌티스>
두 프로그램 모두 참가자를 두 팀으로 나눠 대결을 벌이게 한다. 진 팀의 구성원끼리 협의해 그들 가운데서 탈락 후보를 정한다. 최종 탈락자는 심사위원이 결정한다. <슈퍼스타서바이벌>의 최종 승자에겐 앨범을 낼 기회가 주어진다.
경쟁이 재미있으려면 규칙은 일관되고 명확해야 한다. <어프렌티스>는 자선 행사 벌여 성금 모으기, 낡은 아파트 고쳐 임대계약 받아내기 등 별별 과제를 다 준다. 기준은 간단하다. 어느 팀이 돈을 많이 벌었느냐다. <슈퍼스타서바이벌>은 헷갈린다. 앨범 취입이 목표지만 참가자들은 연기, 춤, 노래 등 지망 분야가 다르다. 협업이 이뤄지지 못할 과제에서도 팀별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예를 들어 보컬 테스트는 팀으로 나눠 진행됐지만 팀의 승리는 구성원의 일대일 대결로 가려졌다. 연기와 춤 지망생들이 몰린 쪽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불리한 쪽에 낀 한 참가자는 방송에서 “나는 참 재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영화 ‘작업의 정석’의 오기환 감독, 영화배우 이혜영, ‘제이와이피’의 프로듀서 박진영으로 이뤄진 ‘구제위원회(심사위원단)’엔 상대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참가자도 탈락 후보로 올라갔다.
권위는 명확한 기준과 논리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 <어프렌티스>의 도널드 트럼프는 절대 권위를 행사한다. 시청자들은 그와 탈락 후보자 사이 토론 과정에서 트럼프의 기준과 논리가 뭔지 알 수 있다. 시즌4 가운데 한 에피소드. 두 팀에겐 노인을 상대로 첨단기기 엑스포를 열라는 과제가 떨어진다. 노인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여성팀이 졌다. 이 팀의 리더 레베카는 고민에 빠진다. 팀원들은 실수한 토라를 탈락후보로 고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레베카는 토라가 아닌 다른 사람과 함께 심판대에 오른다. 트럼프는 레베카를 공격한다. “당신은 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 레베카는 “토라는 이번 과제에선 실수했지만 영민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응수한다. 트럼프는 레베카의 떨어트리지 않았고 둘의 논리는 흥미를 자아냈다.
<슈퍼스타서바이벌>에서 심사위원들은 따끔한 충고도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는 모호하고 일방적일 때가 많다. ‘태도가 마음에 든다’, ‘색깔이 있다’는 식이다. 보컬 테스트에서 탈락 후보에 오른 한 여학생은 무척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박진영은 그에게 “탈락후보가 됐다는 건 더 못했다는 거야”라고 말한다. 그걸로 끝이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 차이도 있다. <어프렌티스>의 참가자들이 “너는 무능해” 등 직설적인 비난을 날리는 데 비해 <슈퍼스타서바이벌>의 참가자들은 “탈락 후보 내가 할께”라고 자청하기도 한다. 이충용 국장은 “공동체적인 특징이 강한 한국에선 참여자들이 대놓고 싫은 소릴 못 한다”고 말했다.
<서바이벌스타오디션>과 <아메리칸 아이돌>
모두 노래나 연기 실력을 보여주고 시청자에게 투표권을 준다.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변화를 치밀하게 좇지 않는다. 프로그램의 방점은 참가자들이 보여줄 쇼와 결과에 있다. <아메리칸…>의 최종 승자는 앨범을 낼 수 있고 <서바이벌스타오디션>의 승자는 한국방송 드라마 <청춘어람>(가제ㆍ6월 방송 예정)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한다.
9일 첫 방송에서 ‘서바이벌스타오디션’은 그야말로 잔인하기만 했다. 참가자들이 기량을 펼치는 축제는 없고 피 말리는 점수 계산만 있다. 참가자들은 각각 2~3분 동안 모노드라마를 보여줄 수 있을 뿐이었다. 자기 소개와 심사위원 질문 응답을 뺀 10여분은 점수 발표로 보냈다. 두 명씩 단상 위에 서고 그들 머리 위로 점수가 지나간다. 낮은 점수를 얻은 사람은 그 자리에 남아야 한다. 결국 이날 5분 넘게 카메라 앞에 서 있어야 했던 탈락자는 울음을 터뜨렸다.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도드라진 살벌한 게임인 것이다.
반면 <아메리칸…>은 출연자들의 공연에 초점을 맞춰 콘서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메리칸…>의 심사위원인 폴라 압둘(가수), 랜디 잭슨(음반제작 프로듀서), 사이먼 코웰(음반제작 프로듀서)은 “내가 들어본 최악의 노래다” 등 뼈 아픈 소리를 쏟아내지만 노래 실력에 대한 평가이며 참고 자료에 머무른다. 심사권은 오로지 시청자의 몫이다. 최종 점수의 40%를 쥐고 있는 <서바이벌스타오디션>의 심사위원인 배우 임동진, 양미경, 임형택 서울예대 교수, 강일수 한국방송 드라마팀 피디, 박중민 예능팀 피디는 출연자들의 연기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를 내놓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이고 심사위원은 왜 그런 점수를 줬는지 알 수 없다. 시청자들은 이들로 부터 판단의 근거를 얻지 못했다. 참여자들에겐 반론의 기회도 없다. 결국 이 프로그램의 게시판엔 ‘인기투표’냐 ‘외모로만 뽑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올라왔다. 전진학 피디는 “첫 방송이기 때문에 참여자들에 대한 정보를 주려다보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2편에선 드라마 <해신>의 한 장면을 연기하는 모습과 준비 과정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