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굿’이란 걸 했다. 할머니신을 내려 받은 지 약 40일쯤 되는 무속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라는 젊은 무당을 찾아갔다. 현재 족집게 차트 1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그 무당은 날 보자마자 ‘살려고 왔구나! 살려고 왔어!’하며 독하게 말문을 열었다. 병원 침대에서 성경책을 가슴에 부여안고 눈물로 ‘오~ 주여~ 어린 양을 구원하소서’를 외치던 내가 무당이 풀어놓는 신통방통한 점괘에 홀딱 넘어가 ‘초대형 굿을 하자!’ 결정하는 데는 불과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을 뿐이다. 그래, 실제 내 귀는 모조지보다 3mm 두껍다. 어찌나 팔랑거리는지 지상 1m 높이의 공중부양도 가능하다. 굿을 할 날짜가 정해지고 무당은 3일 전부터는 누린 것, 비린 것을 절대 먹어서는 안 되며 특히 부부관계는 절대로 금해야 한다고 무섭게 경고했다. 만일 내가 실수로 부정을 저지르면 나중에 작두를 탈 때 자기 발이 벤단다. 난 속으로 별 쓸데없는 걱정을 다 한다 싶었다. 최근 내게 가장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여자라곤 압력밥솥여인뿐이다. 그녀는 매일 저녁 내게 부드럽고 은밀한 목소리로 ‘백미취사가 완료됐습니다’라고 속삭여준다. 그래도 혹 나도 모르게 저지른 부정 때문에 무당이 작두 타다 발이 벨까 두려워 삼일 전부터는 일부러 <원초적 본능2> 예고편도 안 봤다. 마침내 내 운명을 뒤바꿔줄 굿날이 왔다. 오전부터 시작된 굿판은 점심, 저녁을 먹어가며 무려 9시간 동안이나 버라이어티하게 벌어졌고 통돼지를 세우고 천을 찢고 칼춤을 추고 막걸리를 뿌리고 작두를 타며(다행히 무당 발은 안전했다) 정말 난리굿을 벌였다. 굿판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조상들 출연 순서가 왔다.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셨다 가셨다 하시더라. 내 눈엔 아무것도 안 보이지만 오셨다니 믿어야지 싶고 복 주고 가신다니 고맙다 싶더라. 그러다 영화 <사랑과 영혼>처럼 무당의 몸을 통해 돌아가신 아버지가 오셨다. 날 보던 무당의 눈이 붉게 충혈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주르르~ 눈물을 흘린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고~ 불쌍한 우리 막내야~’ 한다.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어리광과 서러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채우는가 싶더니 주체할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무당과 얼싸안고 울고 또 울었다. 22년 만에 다시 날 찾아오신 아버지는 어딘지는 모르지만 좋은 곳에 가겠다는 다소 상투적인 대사를 남기고 다시 떠나셨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옆좌석에 놓인 몇개의 검정 비닐 봉지를 한참 바라봤다. 무당이 복 나가니까 아무에게도 주지 말고 혼자만 먹으라며 싸준 떡이며 과일들. 저거 혼자 다 먹었다가는 복으로 배터질 거 같기도 하고…. 몇년간 탐내던 오디오나 바꿀 걸 싶기도 하고….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쿠바여행을 갔으면 차라리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 아버지를 만났던 그 짧은 순간을 생각했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본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아무도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하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에게 분명히 말했다. ‘아버지, 사랑해요! 어머니는 제가 지켜드릴게요 그리고 열심히 살게요. 안녕히 가세요.’ 아버지에게 작별인사를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다. 그리고 작가로서 한번쯤은 경험해볼 일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혹시 또 모르지, 무속 소재의 드라마로 빅히트를 칠지도!
p.s - <왕꽃선녀님>의 임성한 작가님께 선수를 빼앗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