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 대체역사를 상상해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이다. 이를테면 세계야구클래식(WBC)대회 일본과의 3차전에서 구대성이 나올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것. 텍사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양키스가 아니라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었다면, 이승엽이 몇년 전 메이저리그로 가게 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같은 것을 상상해보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평화롭게 레드삭스로 트레이드되어 갔다면, 양키스의 데릭 지터처럼 보스턴의 구심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승엽이 일찌감치 메이저리그로 갔다면 더욱더 찬스에 강한 대형타자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대체역사란 부질없는 것이고, 단지 흥미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파악하는 데에는 의외로 도움이 된다. 과거의 어떤 상황이, 어떤 요소들이 현재를 만들어내는 데 공헌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3차전을 본 뒤에, 다른 시나리오가 떠올랐던 것도 그런 이유다. 일본전의 패인은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지만, 타격보다 투수력이 뛰어난 한국팀의 전력에서 박찬호와 구대성이 나올 수 없었던 것은 취약점이었다. 구대성이 급작스럽게 경기에 나올 수 없었던 것은 그야말로 운이다. 담이 들어 결장한다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점술가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찬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박찬호는 일본과의 2차전에서 제한투구수를 넘긴 탓에 나올 수 없었다. 사실 2차전에서 박찬호가 꼭 나올 필요는 없었다. 이미 2승을 거둔 상황에서, 적은 점수 차로 지기만 해도 4강에 올라가기 때문에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준결승은 어차피 1, 2위팀끼리 맞붙는 희한한 방식이었다. 마지막 경기에서 숨을 고르고, 전력을 아껴 준결승을 대비하는 것이 최상의 전략일 수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상대는 미국이나 멕시코가 아니라, 일본이었다. 적은 점수 차고 뭐고 일본에 진다는 것은 ‘국민 감정상’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박찬호가 선발투수로 나왔고, 영광의 승리를 거두었다. 박찬호를 구원으로 아껴두고 다음 경기에서도 나올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그 선택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세상에는, 합리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아니, 결정적인 순간에 감정적인 판단으로 역사가 바뀌는 경우는, 오히려 많지 않을까. 연대를 해야 하지만 감정적 대립으로 독자노선을 걷다가 몰락한 정치가들도 많고,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전투를 벌이다가 패퇴한 장군들도 많다. 역사만이 아니라 개인의 경우에도 합리적 판단을 무시하고 감정적 판단으로 일을 그르친 경우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물론 WBC에서의 판단은 그른 것이 아니다.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고, 반대의 선택을 했다면 더욱 욕을 먹었을 것이다. 한국팀은 최선을 다했고, 최선을 다했다면 누구도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야구나 스포츠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에서의 판단이나 결정에 감정이 개입되는 것은 그리 좋은 풍경이 아니다. 모든 것에 감정이 실리는 게 인간이긴 하지만….